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ven Lim Oct 24. 2020

“너와 함께 이기고 싶어!”

<스매시!> 배드민턴 게임이 즐거운 이유

   일곱 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던 수원의 한 아파트에는 아버지 회사 동료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배드민턴을 참 좋아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아파트 앞쪽 길에 배드민턴 경기장 라인을 그려놓고 네트를 설치해 새벽마다 회사 분들과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정말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배드민턴을 즐기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곧잘 아버지를 따라가곤 했지요. 가끔 전날 야근이나 과음 등으로 동료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우리 집에 전화하셔서 아버지한테 “아들이라도 좀 보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그 경험 덕분에 제가 꽤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 같습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권투 등 스포츠 만화들이 참 많은데 배드민턴을 다룬 만화는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 그러니까 2010년인가 2011년 무렵 동네 도서대여점에 <스매시!>란 제목의 만화책이 꽂혀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셔틀콕이 그려져 있는 걸 보니 배드민턴 만화가 분명합니다. 갑자기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배드민턴에 얽힌 추억들이 떠오르더군요. 네댓 권을 빌렸고, 다음날엔 나머지 책들도 읽었습니다.

  

   중학교 졸업반인 쇼타는 배드민턴부 학생입니다. 꽤 센스가 있지만, 승부를 가르는 것보단 취미로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다 보니 배드민턴으로 유명한 고등학교로 진학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체육관에서 유우히란 동년배의 여자아이와 배드민턴을 치고, 그녀의 엄청난 실력에 반하게 됩니다. 배드민턴을 치면 그녀와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배드민턴 특화 고교에 들어간 쇼타,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취미를 넘어 승부의 세계로 초대하는 혹독한 훈련이었습니다.
 
   고난의 순간순간을 지나 주니어 대표와 일본 대표로 성장하는 쇼타의 모습, 그리고 유유히와 나누는 풋풋한 사랑이 18권의 만화책 속에 펼쳐집니다.           


   고교생이 주인공인 흔한 성장만화입니다. 잠재력을 지닌 소년이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여러 경쟁자들을 만나 싸우며 성장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어릴 때부터 옆에 함께 한 여자사람친구(미와), 운명처럼 만난 천재 배드민턴 소녀(유우히), 배드민턴 라이벌이자 파트너로 함께 할 친구(아난)의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어설프게 흉내 낸 듯한 느낌도 듭니다. 어릴 적 사고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통해 병을 극복하는 내용은 일본 하이틴 로맨스물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슬램덩크>나 <다이아몬드 에이스>처럼 시합을 실감나게 나타내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따지자면 ‘배드민턴을 소재로 한 가벼운 청소년 연애만화’ 정도라고 평하는 게 적합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배드민턴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겐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배드민턴은 참 재미있는 운동입니다. 특히 함께하면 더욱 즐거운 스포츠입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어르신들이 하는 생활체육이니까 어쩔 수 없이 복식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식은 정말 체력적으로 기술적으로 너무 힘듭니다(저뿐만 아니라 아마 많은 생활 체육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멤버와 호흡을 맞추고 전략을 나누며 포인트를 쌓아가는 복식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둘이지만 하나이기에 꼭 ‘너와 함께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지요! 쇼타와 아난이 복식조를 이뤄 서로의 빈틈을 메우고 도와가며 상대 팀에 대응해 가는 장면 속에 이 같은 배드민턴 시합이 지닌 매력을 느껴봅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 추억 말고도 동료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누린 기쁨들이 많았습니다. 군부대 체육대회에 후임과 함께 중대 대표로 나서기도 했고, 아버지께서 퇴직하신 이후에는 부모님과 주말 아침마다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군대에 갔다 오니 이런 시설도 생겼더군요)을 찾았습니다. 교회 청년부 교역자로 오신 목사님과 함께 편을 나눠 시합도 했지요. 최근에는 몇몇 가정과 함께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놀다가 남편들이 조를 짜서 리그전도 가졌습니다. 배드민턴 라켓을 들 때마다 참 좋았습니다. 그걸 계기로 한 분은 배드민턴 동호회에도 가입했을 정도니... 배드민턴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분들을 떠올리니 그립고 아쉽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동료 분들은 정말 아득한 추억이 됐고, 군대에서 함께 배드민턴을 쳤던 후임과 청년부 시절 목사님은 결혼식 이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디스크 수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무리한 운동은 못하십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주변 분들마저 못보고 있으니... 함께 땀 흘리며 뛰는 그 순간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그때 더 열심히, 깊게 마음을 나눌 걸 그랬습니다.    


  만화 1권에서의 쇼타처럼 누구나 약하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는 아닐 겁니다. 나는 놓쳤지만 셔틀콕이 땅에 떨어지기 전 받아내 줄 동료가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힘을 다해 라켓을 뻗어 받아내다 보면 약함이 강함이 되고,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편이 스매시를 하게 될 절호의 찬스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아버지댁에 내려가면 배드민턴 라켓들을 들고 올라와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저보다 뛰어난데 이상하게 운동신경은 없는 아내에게 스파르타 훈련을 시켜야겠습니다. 


   “난 꼭 당신과 함께 이기고 싶다고!!”^^


방안의 이 셔틀콕들이 라켓과 만나는 날이 곧 돌아오겠죠? 그날을 기대합니다.


이전 03화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