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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Apr 02. 2020

“볼을 잡으면 관중이 모두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라”

<슛!> 나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슬램덩크> 마지막 권. 강백호가 채소연의 어깨를 붙잡고 말하는 이 대사는 농구를 대하는 백호의 진심이 드러나는 명장면입니다.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본 듯합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축구 만화계의 명작 <슛!>이 바로 그 대상입니다.    

 

   <슛!>은 전중, 평송, 건 세 동급생 트리오가 속한 괘천고등학교 축구부의 전국대회 제패 이야기입니다. 중심인물은 전중! 축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기술은 부족했던 그가 국내·외 여러 인물들을 만나 배우고 깨달으며 괘천고, 나아가 일본의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되는 과정을 대서사극처럼 담아냈습니다. 1, 2부로 나뉘어 자그마치 66권이나 됩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1부는 군대 가기 전에, 2부는 복학생 시절에 봤던 것 같습니다. -이 만화는 일본어 번역이 다소 엉성해서 학교나 사람 이름이 낯설고, 오락가락한 부분도 있습니다.-     


   괘천고 축구부의 중심에는 이 만화의 숨은, 아니 대놓고 꺼내놓은 주인공이 한 명 있습니다. 주장이자 상대 선수 11명을 제치고 골을 만들어낸 전설의 인물. 하지만 백혈병으로 고교 2학년 때 세상을 떠난 구보입니다. 죽은 뒤에도 사마의의 혼을 빼어놓았던 제갈공명처럼, 죽은 구보의 정신이 전체 스토리(적어도 1부 33권은 확실히!)를 이끌어 갑니다.     


   구보는 괘천고 부원들에게 축구를 통해 얻는 자기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이 글 제목으로 뽑은 “볼을 잡으면 관중이 모두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구보의 말, 팀 스포츠인 축구가 그저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게 아닌, 선수 각각이 주인공임을 강조한 것이지요. 한 명 한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서 골문까지 공을 몰고 가는 움직임! 여기서 괘천고의 토탈사커가 탄생합니다.  


   그는 훗날 전중의 상징이 되는 ‘환상의 왼발’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준 인물이기도 입니다. 구보가 없었더라면 전중은 그저 열심히 뛰는 그저 그런 선수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물론 고1때부터 왼발을 단련해 정상에 선 전중도 대단합니다)구보는 아마도 공을 잡은 팀원들은 가장 주의 깊게 보는 1등 관중이었을 것 같습니다. 전중의 왼발이나 독시의 볼 점유능력, 평송의 화려한 기술 등은 구보의 축구를 대하는 태도와, 동료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더욱 갈고 닦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축구 좋아하니?” 죽기 얼마 전 전중에게 던진 구보의 질문은, 아마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혈병으로 죽으면서까지 축구를 놓지 않았던 구보와 전중의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입니다.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 고백(?)하는 <슬램덩크>와 달리 이 만화에선 “축구를 좋아한다”는 전중의 말이 자주 등장해 다소 싫증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보와 전중, 그리고 둘이 좋아하는 축구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장면 같습니다.     


   한편 ‘모든 관중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주인공 의식도 좋지만, 축구를 비롯한 세상 모든 일이 혼자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괘서중학교 때부터 괘천고, 그리고 일본 국가대표까지 동료애를 이어온 전중-평송-건 트리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로를 줍니다. 티격태격하거나 사랑의 라이벌이 될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늘 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연결되어 함께 성장합니다(66권의 책을 완성해가면서 작가의 그림솜씨도 날로 성장했습니다!^^). <슛!> 1부 앞부분에서 셋이 만들어 낸 골이 2부 마지막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이어지는 것을 보면 친구가 만들어내는 힘은 참 대단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문득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를 함께 다니며 우정을 다져온 친구 한 명이 떠오릅니다. 서예학원에서 번갈아 상을 받고, 교회와 대학 동아리에서 듬직한 지지기반이 됐던, 군 생활로 힘들 때 ‘통신보안’을 외치며 전화 걸어주고, 결혼선물로 떡하니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을 사줬던 친구지요. 함께 공부(?)하던 그때는 정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함께라면 정말 대단한 힘을 보일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10년 전 친구놈이 결혼선물로 사준 커피머신은 아직 잘 돌아갑니다. 오늘밤엔 한 잔 해야겠네요~

   전중이라는 환상의 왼발을 가진 스트라이커는 그를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또는 자극을 주며 분발시키는 구보와 친구들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듯 곁에서 함께하는 들이 더욱 삶을 살맛 나게 하는 법이지요. 제가 전중처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더욱 힘써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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