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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31. 2020

“데스노트로 세상을 바꾸는 거야”

<데스노트> 썩은 세상의 고치는 방법?!

   지인의 추천 없이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땐 제목과 저자, 목차 등을 살펴보지만 만화책의 경우엔 아무래도 그림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림이 꽤 괜찮다 싶어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마음에 들면 몇 권을 한 번에 들고 와서 자리 깔고 앉게 되죠.


   <고스트 바둑왕>이 그렇게 만났던 만화였습니다. 그림체가 딱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오바타 타케시, 스토리 작가를 따로 두고 작화만 담당하는 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스트 바둑왕을 보고 몇 년 후, 오바타 타케시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납니다.     


   <데스노트>. 섬뜩한 느낌이 드는 제목이었습니다.

   솔직히 언제 데스노트를 처음 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기 전까진 ‘복학생 시절 학교 근처 만화방에서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만화책 단행본이 2004년 가을부터 2006년 말까지 발간됐다는 걸 보면 회사원 시절에 접한 것이네요. 한꺼번에 쭉 읽어내렸던 느낌으로 봐선 주말이나 휴가 기간 도서대여점에 들렀다 꽂혔던 작품이었던 듯싶습니다. 역시 사람 기억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경시청 경찰국장의 아들 야가미 라이토. 똑똑하고 냉철한 17세 수재인 그는 어느 날 ‘데스노트’라고 적힌 공책을 줍게 됩니다. 따분해하던 사신 루크가 떨어뜨린 것으로, 사신들이 인간들을 죽일 때 이름을 적어넣는 도구입니다. 썩어빠진 사람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라이토는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겠다”며 데스노트를 사용해 범죄자들을 심판해 나갑니다.   
 
   베일 속 살인의 신 ‘키라’가 된 라이토. 하지만 “살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키라는 악”이라 말하는 아버지를 비롯해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수사기관은 이를 반길 수 없습니다. 인터폴까지 나서지요. 세계 최고의 탐정 ‘L’, 그의 두 후계자 등과 라이토의 숨 가쁜 심리 추리전이 몇년 동안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 장르물의 대가 김은희 작가가 있다면, 이 만화의 스토리 작가 오바 츠구미 역시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이 놀라운 것은 물론,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이야기 전개상 빈틈이 없고 치밀합니다. 만화책을 통해 그 어떤 범죄 수사물이나 추리물보다 짜릿한 긴장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화뿐 아니라 몇 편의 영화도 제작된 것이겠죠? 참 대단한 작품입니다.     


   라이토를 보면 ‘이렇게까지 냉철하고 이성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까지 죽었음에도 세상 정화란 목적을 위해 키라의 소임을 다하려는 모습, 이 정도라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맡겨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살짝 스쳐 갑니다. (사실 저는 마지막 라이토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키라 추종자들이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하고 가슴을 쳤었지요!) 정말 우리가 사는 곳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치워주셨으면 하는 악인들이 어디 하나둘이던가요?  

   

   하지만 마음껏 살인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할까요? 라이토 사례를 보더라도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좋은 목적으로 데스노트를 쓰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정체에 다가오는 사람은 선악을 막론하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반에 이르러서는 자기를 잡으러 온 모든 이들을 죽이려고도 하지요. 선과 악이 혼재되고 말았습니다. 자칫 어느 순간 자신이 악으로 흑화된다면(그런 줄도 모른다는 게 무섭습니다), 모든 선이 오히려 적이고 죽여야 할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 속 많은 정치·사상가나 권력자들을 통해 이 같은 모습을 숱하게 봐왔습니다.     


   데스노트의 두 작가도 그 부분을 간과하진 않았습니다.

   보통 주인공의 죽음은 꽤 멋진 법인데 데스노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라이토의 마지막 모습은 장엄하지도, 잔잔한 감동을 주지도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태연하게 적던 그가, 죽고 싶지 않다고 발악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습니다. 만화 첫 부분에 경고한 루크의 음성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데스노트를 사용한 인간이 천국이나 지옥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마라”

   

   요즘 주위를 돌아보면 심판자 부재로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래서 만화에서도 키라가 죽은 몇 년 후까지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는 것이겠죠? 이럴 때 제 앞에 데스노트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봅니다. “못된 니들,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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