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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Jun 24. 2020

“골프의 신은 어린아이에게도 평등하단다”

<하늘의 스바루> 아버지의 이름으로 골프공에 스핀을 걸다!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은 거의 모든 종목을 좋아합니다. 관람하는 것보다는 하는 걸 좋아하죠. 하는 것도 연습보다는 실전이 체질에 맞는 편입니다. 시합을 통해 기량을 쌓아가는 타입이다 보니 돈이 제법 들어가는 종목의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골프가 바로 그런 종목입니다. 4~5년 전 무렵 살짝 골프채를 만져봤으나 필드에 나갈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다가, 홍보팀에 복귀한 지난해부터 1년에 네다섯 번 자연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 꾸준히 개인연습을 해야 필드에서 좋은 스코어가 나올 텐데 실전만을 꿈꾸니... 100돌이 초보자 실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푸른 산들을 배경으로 샷을 날리는 기분은 늘 상쾌합니다. 역시 저는 실전파입니다!^^     


   실전보다 먼저 골프 만화책을 접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이었죠. 비슷한 시기에 <골프천재 탄도>, <라이징 임팩트> 두 작품을 만났습니다. 벙커에 박힌 공을 모래와 함께 쳐올려 홀컵에 넣었던 주인공의 모습, 요즘도 벙커에 공이 들어가 있을 때면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제 샷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ㅠ.ㅠ)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모든 홀 버디를 기록하겠다”는 외침으로, 이번 홀 버디에 실패하면 다음 홀 이글을 노렸던 괴짜선수 만화도 떠오릅니다. (저는 매홀 보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집 책장에는 <하늘의 스바루>가 담겨 있습니다.     


   효도 마사시는 ‘귀왕’이라 불리는 일본 최고의 선수입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선수로, 15년간 정상의 위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거 그에게 필적하는 라이벌이 한 명 존재했습니다. ‘스핀의 마술사’라는 별칭의 호시노 다이치지요. 일본오픈 3라운드까지 둘 간 박빙의 대결이 이어졌지만, 다이치가 불의의 사고로 마지막 날 참여치 못하면서 둘의 승부는 끝나고, 반신불수가 된 다이치는 다시는 골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이치의 아들 스바루, 농구를 참 좋아하는 소년입니다. 하지만 신장 질환으로 인해 무리한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실의에 빠지고 말죠. 그런 그 앞에 골프가 운명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이 든 노인도 하는 운동이란 걸 목격한 스바루는 용기를 내고, 다이치는 자신의 골프채를 스바루가 쓸 수 있는 크기로 개조해 전해줍니다.
 
   초등학생 대회에 출전한 스바루는 거기서 숙명의 라이벌을 만납니다. 바로 일본 골프 최강자 효도 마시시의 아들 신! 그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아온 초등학교 골프계 거물입니다. 이제 ‘귀왕’과 ‘스핀의 마술사’가 내지 못했던 승부가 아들들에게 이어집니다.    

 

   <하늘의 스바루>란 제목대로 스바루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골프천재의 아들이자, 병약한 몸을 지녔던 스바루가 라이벌 효도 신과 경쟁을 하면서 일류 선수가 되고, 세계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우승한다는 ‘전지적 스바루 중심 시점’의 이야기에 충실합니다. 웨지를 사용해 하늘 높이 공을 띄워 마법 같은 스핀으로 홀컵에 붙이는 궁극의 존(성역)을 지녔다는 게 최고 선수가 된 비결입니다. 제목 안에 이야기의 주제와 내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바루 외의 인물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일생의 라이벌 신조차도 (몇 차례 박진감 있게 대결하는 부분은 있습니다만) 말미에는 병풍 취급하는 느낌이 듭니다. 골프 인물 스바루는 무척 관심이 가지만, 전체 만화의 구성을 봤을 때 인물 관계나 스토리 긴밀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골프 초보자이자, 웨지와 퍼터를 잘 사용해야 하는 숏게임에 특히 약한 저로서는 이 나이에 다시 봐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스바루처럼 존 영역에 이르면 칩인 버디 몇 번은 할 수 있을 텐데... 만화 밖 현실의 나약한 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바루의 첫 필드 라운딩을 효도 마사시가 함께 한 부분이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불구가 되어 아들과 함께 필드에 나설 수 없는 아버지, 일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이에게 그 역할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일본 최강자입니다.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도 바쁜데 오래전 친구의 아들, 그것도 완전 초보 아이와 한가롭게 라운딩할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직 자신의 친아들과 함께 필드에 나선 적도 없습니다. 자기의 등을 보고 자라온 아들이 얼마나 자기와 함께 골프를 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적당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사시는 그러지 않습니다. 스바루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희생합니다.

   이는 다이치와 마사시가 과거에  끝난 라이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관계임을 알려줍니다. 더불어 일본 최강자와 함께 라운딩한 스바루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라운딩한 아이’에게 경쟁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효도 신과의 대결 구도가 전개될 것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늘의 스바루>란 제목처럼, 이 장면 또한 만화 전체 스토리를 압축해 표현한 부분이랄 수 있습니다. 왠지 단순한 애증을 넘어서는 진하고 끈끈한 부자(父子)의 정, 라이벌 간의 교감 같은 것이 느껴져 뭔가 뭉클한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듯 스포츠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특별함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만화책을 덮으며 문득 논어에 나오는 ‘知之者 不如好之子 好之者 不如樂之者’란 말이 떠오릅니다.

   스바루의 골프는 好之者의 골프입니다.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골프에 다가섰기에, 그저 기술을 습득하려 했던 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전을 보였고 세계대회에서까지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 듭니다.

   1등이나 타이틀이 아닌 그저 좋아하는 골프를 하는 게 중요했기에 다른 이에게도 편견 없는 마음으로 다가가 우애를 쌓을 수 있었고, 세계대회 우승 후 집에 돌아와서 연습하며 “또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소 허무한 마무리지만 ‘일상의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랄까요?조금더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그는 분명 樂之者의 경지에 오를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회사에 다니고, 뭣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뭘 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知之者와 好之者를 넘어 즐김을 맛을 느끼는 삶으로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 ‘전 정말 즐기는 자로, 연습도 하지 않고 골프를 즐기는데 왜 존(성역)에 다다르지 못하는 걸까요?’ 이런 우문을 하려다 깨달았습니다. 知之者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樂之者를 논하려는 꼴이란 것을요.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모양입니다. 코로나19 핑계 대지 말고 스크린 연습장이라도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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