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무언가에 속하려 했다. 아니, 어쩌면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웠다. 모든 것이 분류되고, 명명되고, 코드화되는 이 사회에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리를 찾고 싶었다. 어떤 틀 안에 들어가고, 그 틀의 언어로 나를 설명받고, 그 설명 속에서 잠시라도 안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진단을 붙잡았고, 때때로 성격 유형을 의지했다. ADHD는 내 고통의 일부를 설명해 주었고, INTP는 내 사유의 일부를 구조화해 주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았다. 진단은 병리를 전제했고, 유형은 이상화를 전제했다. 하나는 나를 ‘결함 있는 존재’로, 다른 하나는 ‘가능성 있는 존재’로 서술했다. 그러나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끝없이 미끄러졌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고, 동시에 둘 다였다.
문제는 내가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 서 있다는 점이었다. 장애라기엔 너무 멀쩡했고, 정상이라기엔 너무 무너져 있었다. 천재도 아니고, 둔재도 아니었다. 사회성이 없지만 고립을 원한 적도 없었고, 실행력이 없지만 의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그 어떤 프레임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았다.
나의 행동은 늘 지연되었고, 감정은 과잉 반응했으며, 에너지는 불규칙적으로 분포되었다. 어떤 패턴도 일정하지 않았고, 어떤 흐름도 반복되지 않았다. 평균이나 전형이라는 말은, 나를 그저 지우는 방식일 뿐이었다. 통계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나의 리듬은, 언제나 오류로 간주되었고, 그것이 나의 존재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많이 해석되었고, 동시에 전혀 해석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게으르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예민하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우울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고 했다. 그 모든 말은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맞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맞는 말들로 구성된 그 총합은 나를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설명된 적이 없었다. 그럴싸한 언어들이 덧붙여졌지만, 그 언어들은 내 구조에 닿지 않았다.
나는 분류를 원했지만, 결국 분류되지 않는 자리에 머물렀다. 예외로 존재했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었고, 오히려 고립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은 예외를 이해하지 않는다. 통계에서 벗어난 값은 노이즈로 간주되고, 분류 체계에 걸리지 않는 존재는 오류로 취급된다. 나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해야 했고, 그 의심 속에서 나의 현실은 점점 더 희미해졌다.
ADHD는 종종 창의성과 연결되어 소비되고, INTP는 논리적인 능력으로 이상화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실패자처럼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조차도 아니었다. 실패자 안에도 어떤 정형이 있다면, 나는 그 정형에서조차 이탈한 존재였다. 나는 실패의 방식마저 독특했고, 그 독특함은 위로가 아니라 고립이었다. 나는 진단의 틀 속에서도 설명되지 않았고, 유형의 안에서도 변칙으로만 남았다.
어떤 날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말해지는 것도 아니고, 해석되는 것도 아니고, 분류되지도 않는 채, 단지 어딘가에 '있기만 한' 존재. 존재하되, 인식되지 않는 상태. 그것은 투명함이나 자유가 아니라, 실존의 침몰이었다. 나를 붙잡아 줄 어떤 틀도 없이, 나는 의미 없이 표류했다.
존재는 언제나 언어보다 먼저 있다. 기준이 생기기 전에 이미 살아 있었던 누군가를, 어떻게 기준의 잣대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분류 이전에 존재했고, 해석 이전에 고통받았다. 예외라는 말조차, 어떤 기준을 중심에 놓고 바깥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중심의 존재가 아니었고, 그 주변도 아니었다. 나는 기준이 생기기도 전에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해석을 원했다. 단지 정체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언어가 없으면, 구조가 없고, 구조가 없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조 없는 세계에서 무너졌고, 언어 없는 존재로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분류될 수 없다면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내 분류를 내가 만들어야 했다. 통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나, 진단의 기준에서 애매하게 어긋나 있는 나, 성향 유형 안에서조차 설명되지 않는 나. 그 모든 나를 묶을 수 있는 언어는 외부에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이 언어는 하나의 진단명도 아니고, 하나의 유형도 아니다. 그것은 해석의 구조이고, 존재의 도식이며, 실패와 불능을 삶의 언어로 다시 쓰는 문장이다.
나는 어떤 분류에도 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해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조건이었다. 누구도 나를 대신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끝까지 나를 해석해야 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이제, 기존의 언어가 아닌 나만의 언어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통계적 평균이 아니며, 진단의 기준도 아니다. 나는 말해지지 않았던 예외값이고, 해석되지 않았던 존재이다. 그리고 이제, 그 예외가 말해지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