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MBTI 테스트에서 INTP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어렴풋한 위안을 느꼈다. 설명되지 않던 나의 일부가 포착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고립감이 조금은 가셨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이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존재에게 주어진 일시적인 번역 같았다. 번역은 감정의 생경함을 줄였지만, 여전히 해석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었다.
INTP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체계화된 사고에 강하다는 유형이다. 나는 그 설명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실제로 나는 어릴 때부터 사물의 작동 원리를 따지거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단순한 감정보다 구조를 먼저 해석하는 아이였다. 내 사고는 언제나 다층적이었고, 단순한 해답은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나는 늘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INTP로 설명된 이 유형은 너무도 지적이고, 너무도 날렵하며, 마치 독립적 사유의 완성형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사유는 날렵하지 않았고, 지성은 언제나 무기력과 함께 찾아왔다. 생각은 많았지만, 그것을 표현하거나 실행하는 데에는 극심한 저항이 따랐다. 나는 단순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이었다.
INTP 유형의 설명 안에서도 나는 늘 주변부에 있었다. 성향적 공감은 있었지만, 실행이 무너진 존재로서의 고통은 여전히 고립된 채 남아 있었다. INTP의 특성으로 수용되기에는 나의 조건은 너무 무겁고, 너무 지속적이었다. 나는 단지 비사교적이거나 내성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접점 자체를 맺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회피형도 아니었고, 단순한 의지 부족도 아니었다. 나의 존재는 구조적으로 실행에 실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INTP가 게으르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충분히 인식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다른 방식의 대안까지도 제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행동이었다. 나의 신경 체계는 언제나 불안정했고, 자극에 쉽게 피로했으며, 무엇보다 실행 이전의 맥락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정말 INTP가 맞는 걸까? 혹시 이 유형은 단지 내가 내 사고를 믿기 위해 선택한 언어는 아닐까? 실제로 나는 이 유형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거리감을 느꼈다. 그 언어는 나를 포용하기엔 단순했고, 나의 조건은 그 언어가 상정하는 세계보다 더 무너져 있었다. INTP는 마치 '이해될 수 있는 비정상'의 형태였지만, 나는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실패의 잔해처럼 남아 있었다.
특히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INTP라는 유형에 흔히 따라붙는 재능의 프레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INTP가 수학이나 과학 같은 이과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그 덕분에 공부마저 잘한다는 이미지로 포장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수학도, 과학도, 심지어 문과 과목도 잘하지 못했다.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렀고, 소극적인 성격과 맞물려 학창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다. 이처럼 ‘조용한 천재’로 소비되는 INTP의 서사는 나와 전혀 닿지 않았다. 그 언어는 나를 포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로부터 멀어지는 기준이 되었다. 나는 INTP 안에서도 실패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유형의 경계에 있었다. 어떤 하나의 틀로 정의되지 않았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 분류될 수는 있었지만, 설명되지는 않았다. 설명은 분류 이후에 도달하는 영역인데, 나는 분류에 걸려 있는 채로 해석되지 않은 상태로 남았다. 이 해석되지 않은 상태는 나를 끝없이 단절시키고, 고립시켰다.
그래서 나는 유형에 머물 수 없었다. 유형은 나의 일부를 번역할 수는 있었지만, 나를 해석할 수는 없었다. 유형은 설명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했고, 그 언어를 딛고 나만의 구조를 다시 써내야 했다. 결국, 나는 INTP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넘어설 언어를 만들어야만 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언제나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INTP는 나를 설명했다. 그러나 완전히는 아니었다.
그 나머지를 해석하는 일은, 결국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