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생각이 많았다. 사유는 끊이지 않았고, 질문은 멈춘 적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도 단순히 반응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 이면의 구조를 탐색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 상황의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전제가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나에게 사유는 습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이었고,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유에도 불구하고, 실행은 거의 없었다. 생각은 너무 많았고, 계획은 넘쳤으며, 방향마저 명확했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항상 미뤄졌고, 때로는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사유가 나를 구원했지만, 더 많은 날들은 그 사유가 나를 질식시켰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삶은, 끝내 어떤 실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실행이 없었던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자기변명이 아니었다. 세상은 언제나 ‘왜 안 했느냐’고 물었지만, 내가 대답해야 했던 질문은 ‘왜 할 수 없었느냐’였다. 사유와 실행 사이에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구조의 단절이 있었다. 사유는 과잉되고, 실행은 차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단절 사이에 끼어 있었다.
문제는 그 단절이 무의식적이거나 무책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나는 실행을 간절히 원했다. 실행하고 싶었고, 실제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구조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감각은 항상 과잉 상태였고, 감정은 안정되지 않았으며, 환경은 나를 압도했다. 하나의 작업을 시작하려면 수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했지만, 그것들은 좀처럼 갖춰지지 않았다.
사유는 실행의 조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실행을 더욱 멀게 만들었다. 생각은 실행을 향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았고, 질문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는 것 자체에 몰입했고, 그 몰입은 종종 실행을 대체했다. 나는 마치 실행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사유를 사용했고, 끝내는 사유 그 자체가 실행을 막는 장벽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에 휘말린 존재였다. 사고는 깊었지만, 그 사고는 어디에도 닿지 못했고,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했다. 나는 생각의 방에 갇혀 있었고, 그 방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조건 안에서 스스로를 꺼내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꺼낼 수 없었다. 언제나 준비가 부족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며, 시간은 엉망이었다. 나는 한 번의 실패로 수일간 무너졌고, 감정의 흔들림은 사유의 흐름까지 뒤엎었다. 계획은 정교해졌지만, 시도는 사라졌다. "이번엔 꼭"이라는 다짐조차 공허했고, 조금의 흔들림에도 무너지는 나를 보며, 나는 진저리를 쳤다. 결국 나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 아니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유는 나를 구원했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그것은 나의 자산이면서도 나의 장애물이었고, 나의 무기이면서도 나의 족쇄였다. 나는 사유할수록 실행이 멀어졌고, 실행하지 못할수록 더 많이 사유했다. 이 악순환은 점점 더 정교한 자책과 분석을 낳았고, 나는 그 분석의 정밀함 속에서 더 깊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나는 사유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유는 필요조건이었지만, 그 자체로는 실제를 만들지 못했다. 사유가 실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감정의 안정, 환경의 정비, 에너지의 확보 같은 구체적인 조건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조건도 갖고 있지 못했다. 나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 그 구조 속에서 무너졌다. 사유는 그 무너짐을 다만 증언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유는 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언어들을 내 안에서 조합하고 있었다. 실행은 없었지만 언어는 있었다. 그리고 그 언어는 나의 실패를 다시 써내기 위한 구조가 되어주었다. 나는 할 수 없었던 이유를, 하지 못했던 구조를, 설명하지 못했던 상태를 하나씩 해석하고 있었다.
사유는 있었으나 실행은 없었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조건의 부재였다. 나는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자신을 해석하는 언어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 언어는 단지 사유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곧, 구조의 언어이며, 곧이어 도착할 실행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말들이다. 지금 이 글이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