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거 같은데...
지방에서 나고 자라 여의도에서 시작하는 25살의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은 현실 확인의 연속이었다.
일이 많아서 하는 야근이 아니라 자기보다 먼저 퇴근하면 다음날 업무로 보복하는 상사 때문에 하는 눈치 야근 (괜히 꼬투리 잡고 트집잡기)
말 많은 상사 비위 맞추기 위해 점심 먹으면서 귀에 피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허겁지겁 먹을 때 (왜 그렇게 밥은 빨리 먹는지)
부하직원 한 번씩 다 울려봤다는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상사가 나를 인신공격 할 때 안 울려고 허벅지에 피멍 들 때까지 꼬집을 때. (후에 안 울었다고 독하다고 함)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호선 당산행 출근 지하철에서 "서른 살의 심리학"을 서서 읽고 있었다. 그러다 한 부분에서 왈칵 눈물이 나 하품하는 척하며 눈물을 닦았다. 어릴 때 가졌던 막연한 이상이 현실과 부딪쳐 깨지며 타협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는데 정말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무조건 1년은 버텨야 한다는 아빠의 조언에 꾸역꾸역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니 한국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어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큰 깨달음과 저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다들 떠나세요! 도전하세요!
로 끝난다면 참 좋겠다만 나의 삶은 그러한 청춘소설류는 아니였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많은 걸 느끼고 성장 할 수 있었다. 단연코 내 인생 여행 하나 중 꼽히고 누구든지 이런 경험을 하길 바란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뒤 맞은 현실은 다시 취준생. 다들 경력직만 원하는 거지 같은 세상!을 경험한 지 일 년 반이 지났을까? 힘들게 힘들게 중소기업이지만, 내가 관심있는 직무로 입사를 했고 남들은 일 년도 못 버티는 곳에서 3년을 열심히 일했다.
모든 게 다 나쁘진 않았다. 사람의 부침이 심하다 보니 내가 팀에서 직접 미팅, 박람회도 참가하고, 통역, 해외출장 동행을 했다. 경영진과 의사소통을 많이 했던 자리 덕분에 신입 치고는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조직의 부속품이 돼서 일하는 것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스스로 결과물을 얻는 자리가 나와 맞았기 때문에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의 동기부여 방식에 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직원에게 "You are not GOOD enough"를 말하며 그러니 더 열심히 해! 가 동기부여의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끊임없는 채찍질을 통해 알을 뚫고 나와야 하고, 못하는 사람은 정신력이 약한 것이 골자였다. 무조건적인 칭찬이 동기부여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그 채찍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이었다.
어떤 직원의 어머니가 보험영업을 하셨는데, 네가 지금 열심히 일 안 하면 나중에 너네 엄마 같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의도를 떠나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직원 어머니의 삶을 전후관계도 모르면서 실패자의 인생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이는 인격공격과 다름 없었다. (패드립은 아니잖아요!) 또는, 10년 근속 근무를 하신 만년과장님에게 같은 팀도 아니었던 내 앞에서 네가 그러니 몇 년째 과장인 거다. 네가 우리 회사 아니면 지금 나이, 그 능력에 어디를 가겠냐고 한 대표의 말에 과장이 씁쓸하게 맞다고 대답하는 그 상황이 너무 슬펐다.
그러다가 직장생활 처음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팀장도 없이 팀원 한명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진행 하는데 미팅에 갈 때마다 아니라고 퇴짜 맞고, 정신교육(너는 부족해) 돌림 노래를 듣는 것처럼 계속 세뇌를 당할 때였다. 그 때, 안되겠나 싶었던지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했고, 결국 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왈칵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이불 킥하는 순간이지만 그만큼 정신적인 피로도가 쌓여 있었다.
새벽 3시에 택시 타고 퇴근하다가 정말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에 이직 준비고 자시고 그냥 나가겠다고 퇴사 통보를 했다.
모두들 이렇게 산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이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한다고 한들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한다면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았다.
회사를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정말 다 이래? 이렇게 평생을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