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엔 야근이지
1.
서울 한복판에서 문득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기분 있잖나. 드라마에서처럼 "다 나가 있어."라고 외친 뒤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는 거. 이럴 때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를 잡아타면 짧게나마 기분 낼 수 있다. 가령 4층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면 10층까지 분위기를 낸다든가. 엘리베이터 가장자리 쪽에 붙으면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도 떨어진다. 사무실 흉내도 낼 수 있단 말. 오늘도 모두 내보낸 뒤 잠시 혼자 있다 왔다.
2.
점심시간에 즐겨 찾던 카페가 있다. 우유 맛이 진한 라테를 만들어주는 곳이다. 늘 사람이 드물었던 곳으로 기억한다. 이곳을 근래 즐겨 찾았다. 다이어리를 펼쳐놓는다든가 책을 읽는 등 시간을 때웠다. '하루'의 '쉬는 시간' 같던 기억. 그게 어제부로 깨졌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슬아슬했다. 급작스럽게 손님이 많아졌다. 어제는 창가에 혼자 앉은 내 옆자리에 아저씨 세 분이 자리 잡고 담소를 나눴다. 그런 식으로 합석하는 일이 잦아져서 오늘은 가지 않았다. 나는 낯가린단 말이다.
3.
제주행은 불발 났다. 면접이니 뭐니 해서 한 일은 많아 보이는데 딱히 남은 건 없다. 다만 그 과정의 번잡스러움이 마음에 쌓여 이따금 돌아보곤 한다. 서울 연희동에서 제주 한라산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한 번씩 돌아본다. 보일 리 만무하건만 사람 마음 그렇잖나. 아쉬움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거라고 속내를 다독인다. 덧붙여 면접 건과 별개로 제주행 기회가 한 번 더 왔는데 포기했다. 유달리 제주가 안 가지는 듯하여 내심 '이 정도로 안 되면...'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면접 보러 가야 하는데 더 이상 회사를 빠질 구실이 없다. 휴가도, 연차도 이달에 소진했다. 괜히 '골라 갈 걸 그랬나' 싶고.
4.
덜 마른 빨랫감을 그대로 입고 나온 적이 있다. 티셔츠다. 엄밀히 말하면 덜 말린 듯한 냄새가 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출근시간, 조금 급했고 후각에 충분한 관심을 할애하지 못했다.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냄새가 올라왔다. 빨랫감을 음지에서 말렸는데 여전히 눅눅한 기운이 감도는 그런 상태가 몸에 밴 것 같았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내 코에 오를 정도면 상태는 꽤나 심각한 편이다. 딱히 언급하지 않아도 이런 날은 늘 머피의 법칙을 따른다. 만원 지하철에 유달리 사람들과 붙을 일이 잦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코를 막아줄까 하다가...
5.
3호선을 타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내려오다 보면 한강이 보이는 구간이 있다. 옥수역에서 압구정역 사이다. 이때가 되면 폰을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창밖을 바라본다. 아침해가 부서지는 강물은 딱히 미사여구 없이도 사람 마음을 흔든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이 구간 즈음 기관사분들의 멘트를 들은 기억이 있다. 감성 담은 멘트라고 해서 뉴스 같은 데도 소개됐다. 당시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는데, 기관사분들의 멘트가 알아듣기 어려웠던 탓이다. 마이크와의 거리 문제 거나 발음 문제, 음량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터다. 근데 오늘. 오랜만에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딕션'이~?! ...아카데미 다닌 분인 줄.
6.
아베 코보의 <타인의 얼굴>을 읽고 있다. 오늘까지 완독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듯하다. 이 단락은 그런 다짐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소설이 쓰인 연대에 유행하던 문체인지, 작가의 개성인지, 역자(譯者)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잘 안 읽힌다. 종이에 활자를 눌러쓰는 것처럼 읽는 것 또한 한 자 한 자 뇌리에 구겨 넣으면 어떻게든 읽어지긴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읽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완독 하는 것만이 독서는 아니"라는 어느 명사의 발언도 떠오르고... 다른 책을 집어 들고 싶지만 아직은 화요일이라며 마음속 엉덩이를 걷어찬다. 다 읽고 기쁨이 남았으면.
7.
오늘은 아마도 야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