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

190828

by OIM

나라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지나가는 과정이겠거니 생각 중이다.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조용히 하라"고 해서 딱히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런 성격의 문제도 아니고. 다만 뉴스는 어디까지 뉴스로 남아있던 전과 달리 이번엔 내 생활과 뉴스의 접합부가 선명하다. 아마 다른 이들이 느끼는 감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터다. 문제가 깊어지면 우려가 커지고 우려가 커지면 여유가 사라진다. 여유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예민해지고 예민한 감정은 갈등을 부른다. 갈등은 크고 작은 앙금을 남길 테고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거다. 여러모로 이번 이슈들을 길게 끌지 않았으면 하지만 어쨌든 지켜보는 일 외엔 딱히 할 일도 없다.


매뉴팩트커피, 연희동.


1.

아침에도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 아침마다 있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날이 그렇다. 교통대란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재료를 가득 채운 샌드위치 속처럼 불안정하다. 한입 베어 물면 반대쪽 재료가 삐져나갈 것처럼 신호를 준다. 아침 시간 지하철이 이와 흡사하다. 역마다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린다면 아마 데스매치가 펼쳐지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2.

밀고 들어온다. 입구 쪽에 선 사람들. 밀 여력이 있는 건장한 남자나 아저씨들이 주축이다. 아주머니들도 종종 보인다. 아무래도 키가 큰 남자들이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고속터미널역에서 밀고 들어왔다.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정말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아랑곳 않는'다.


3.

급기야 속에서 비명이 터졌다. 타고 있던 사람 중에 임산부가 있었나 보다. "임산부가 있어요! 자리 조금만 터주세요! 앉을게요!" 누군가 외쳤다. 하지만 문이 닫힐 새라 사람들은 밀고 또 꾸역꾸역 들어왔다. "아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나는 순간 무슨 일 벌어진 줄 알았다. 안쪽에 있던 내게도 사람들의 압력이 전해지기 시작할 무렵 일어난 일이라 임산부에게 누군가 충격을 가했다고 추측했다. 아찔했다.


4.

비명은 임산부의 것이 맞았다. 압력이 가해지자 경고성으로 외친 듯했다. 그에 놀란 것은 주변인들이었고, 입구 쪽에선 여전히 타려는 이들과 이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버티는 이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붐비던 거기서 결국 임산부는 노약자석에 앉았다. 임산부가 타고, 사람들이 밀고, 양해를 구하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앉기까지의 과정이 불과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에 일어났다.


5.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을 매일 아침 체험한다. 새치기하는 이들은 수시로 볼 수 있고 자리에 앉으려고 남을 밀고 가거나 간접적으로 자리를 뺏는(?) 일도 종종 보인다. 밀고 밀리는 현상은 러시아워의 관성 같은 거라고 하더라도 그 관성의 동력원이 될 필요는 굳이 없다. 길을 트라며 엉덩이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내 작은 이익이 타인을 어떻게 침범해가는지 1,250원을 내고 배운다.


6.

누군가에게 닿지 않으려 몸을 움츠리거나 누군가를 밀지 않기 위해 붙잡을 것을 찾는 행위, 좁은 공간에서 지나갈 길을 터주기 위해 몸을 비트는 행위, 상대를 긁지 않기 위해 가방을 앞으로 돌려메는 행위 등 이 모든 습관에 대한 신뢰가 '무질서의 관성' 앞에서 얼마나 허무해지는지. 근데 얼마 전 <캠핑 클럽>에 소개된 이상순의 일화가 마음에 불을 지폈다.


7.

눈에 띄지 않는 곳에도 열을 쏟고 있는 이상순을 보며 이효리가 "오빠, 그렇게 해봤자 아무도 몰라"라고 했더니 이상순이 그랬다고 한다. "내가 알아"


8.

행동의 근거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거기서 조금 힌트를 얻어왔다는 뭐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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