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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Dec 10. 2021

"저거 인간 되려면 한~참 멀었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대사인 줄 알았더니 내 얘기였구나

서울 연희동.

열린 사고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글로 쓰거나 입으로 뱉는다고 금방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열려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해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랬다. '그래도 나 정도면…'이라고 자만했다.


얼마 전 일이다. 공항철도 김포공항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셨다. 그는 내게 "마산 가는 거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예?"라고 답했다. 그는 재차 "마산으로 가야 하는데…"라며 길을 물었다. 나는 "마산이요?"라며 잠시 머리를 굴리다 "마산이... 지하철로 마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지명이 '마산' 맞냐고 여쭸다. 할아버지는 그렇다며 일곱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들었다 했다. 나는 "여기서 마산을…"이라며 지방에서 올라와 지리를 잘 모르는 분일 거라 생각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내 기억 속 '마산'은 통합 창원시의 그 마산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울역이나 공항으로 안내할까 하다가 거듭 "일곱 정거장…"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잘 모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집으로 오는 길 포털에서 '마산'을 검색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가 나왔다. 화면 속 모든 결과가 그 마산을 가리켰다. '지하철로 마산을 어떻게 감 ㅎㅎ' 따위의 생각을 했다. 지하철 앱도 뒤졌다. 김포공항역에서 7~8 정거장 내에 있는 역명을 훑었다. 그랬더니…


있었다. 김포골드라인에 마산역이 진짜 있었다. 이 라인은 양촌역과 김포공항역을 잇는 신설 노선으로 재작년 개통됐다. 나는 찾아보지도 않고 멋대로 상대를 조금 이상한 축에 세워버린 셈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하철 좀 많이 타서(별로 안 탔다), 지리에 익숙해서(안 익숙했네), 정보 좀 잘 찾아서(못 찾네) 뭐라도 되는 양 우쭐거린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내려서 걷는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 상당히 건방지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 거 있잖나. 거울로 자기 모습을 보다가 평소에 못 보던 각도에서 비친 모습에 놀라 '내가 이렇게 생겼었어?'라며 실망하는 거. 다른 데 싫은 모습.


흡사 고해성사 같지만  자신이 그렇게 싫었던 적이 없어서 까먹지 않기 위해 적어둔다. 비슷한 실수를  할까 . 설령 실수가 아니라도 그런 사고가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싫어하는 인간상을 닮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거울 보고 ‘극혐’하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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