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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가희 Jul 01. 2022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서재 독서 기록

자기소개의 기본 공식이라면 "저는 누구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나 살고, 몇 명의 가족과 함께 지냅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말하기 어려운. 아주 어린 날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을 저자를 떠올리면 미어지는 감정을 느낀다.


내가 만약 아동양육시설에서 근무를 했다면 집단 통솔의 용이함이나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가정에선 두지 않을만한 규칙을 세웠을까. 선생님 행동에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서 우유를 마시는 게 잘못이냐 아니냐보다 아이의 환경, 성격, 마음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그만큼 아이와 함께 지내는 어른에겐 적당한 예민함과 민감성이 필요하다고 또 한번 느꼈다. 일부러 상처주기 위한 행동을 한 건 아니었겠지만, 상처가 됐을지 모르니까. 가끔씩 미안한 마음이 드는 어린이가 생각날 때가 있다. 어른이나 친구한텐 미안한 마음 전하기가 비교적 쉽고, 다투기라도 하는데 어린이는 어른를 상대로 그렇게 하긴 어려우니 참는 날이 많았을 거다. 준비가 되면 꼭 연락해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 배우자와 합의가 된다면 입양도 고려해보고 싶었다. 입양된 아동이 건강하게 살만한 조건을 갖춘 부모가 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려나. 입양을 하게 된다면 우리 부부를 마음에 들어하는 아이를 맞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전에 봉사활동을 거쳐서라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고.


작고 여린 아이를 괴롭히는 과정이 살벌하다. 당장 내 눈 앞에 식칼을 들고 와 목을 쑤셔 버리겠다고 해도 무서울 일이 어린 작가에겐 어땠을까. 무섭다, 공포스럽다, 두렵다 그 이상의 표현이 필요했을 거다. 매일이 '살려주세요'려나.


모두가 같은 도덕적 기준과 정의를 실천한다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사람이 사는 걸지도 모른다.


최근 배달 음식을 시키고 산책을 다녀 오는 중에 배달원과 마주쳤다. 그 분이 배달을 마치고 탄 차는 주간보호센터 차량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 가지 않고 차량을 보고 있었다. 국가 세금으로 채워진 주유비가 이렇게 쓰인 건가 하는 사실에 차량 사진을 찍어 연락하려고 했다. 옆에서 말려서 결국 찍진 못했지만, 다들 나의 안위를 걱정했다. 정의가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최근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을 얘기하면서. 그냥 못 본척 눈감으면 안 되냐고. 나를 걱정해서.


학대는 그냥 넘길 생각없었다. 신고와 동시에 나와 기관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하지만,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돼 원망받고 싶지 않다. 더 현명하게 신고할 방법, 함께 신고해줄 동료, 자주 신고해서 무뎌질 마음에 대한 기대, 거기에 연기력까지 보태진다면 더할 것도 없다.


왜곡된 사고로 다른 사람 말이 들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다른 사람 일을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데 나에겐 그렇게 못하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눈 앞에 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나라면 어떤 위로를 전했을까. 사실 그 말이 여지껏 간절히 듣고 싶던 말이 아니었을까. 깨달은 날 많이 울었다. 임가희가 임가희를 소홀하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서. 그간 위로해주지 못한 시간이 길어서 미안했다. 나도 참 사랑받고 싶었을텐데 말이다. 약속했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기로 그리고 더이상 내게 미안한 일 만들지 않을 거라고.


내가 가진 상처와 결핍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사회복지가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고, 그렇게 미웠던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 보며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 가족처럼 다사다난한 가정은 볼 일 없을 거란 말이 쏙 들어 갈만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 정도면 감사해야겠네' 싶을 날이 늘었다.


다른 사람 삶에 작고 큰 영향을 주면서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자기 삶 일부를 보여 주심에 감사하고, 감추고 싶은 일을 되짚게 할 때는 죄송하다. 평생을 살아도 겪지 못할지 모르는 일을 간접으로나마 접하는 이 직업. 이런 면에서 사회복지사는 배우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할수록 소진되고 다시 생각해보면 매력적이다.


성인이 돼선 일을 벌리는 습관과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옥죈다. 언제부터였는지 시기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뭔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는 거다. 그리고 불안의 근원에는 불쌍하게 비춰지기 싫다는 마음이 있다. 충분히 잘 자랐다고, 주어진 환경이 어려웠어도 잘 버텼다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래서인가 비교적 빠르게 나의 '열정'은 '결핍'과 '결핍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 눈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배우자는 같이 살기 전엔 '열정'이라 칭하더니 같이 살고 나선 '과욕'이라고 한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쉴새없이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속상하다 못해 화가 난다고해서 이 건으로 몇 번 다퉜다. 최근에 와서 가진 결핍과 불안에 대해 터 놓았다.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 몰입이었고, 그래서 나는 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힘들어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이들 일에 과도하게 집중했고, 그래서 빠르게 소진했다. 소진됨을 느끼면서 제어하지 않았던 건 그래야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주변에서 말리고, 나자신도 고민해야할 지점이라고 인지해 큰 맘 먹고 휴식을 결정했다. 소진된 나를 돌봐야 할 때라는 걸 받아 들이고 싶었다. 퇴직 이후에도 하루가 바쁘게 굴러간다. 어떻게 쉬는 게 잘 쉬는 건지 6개월이 지났어도 모르겠지만 소소하게 행복하고, 감사하다.


같은 마음으로 사회복지가 즐거웠다. 적성에 잘 맞는다고 느꼈고, 더 나아가서는 나에게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사회복지사가 되어 현장에 있진 않겠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는 안 해도 독서는 해 왔던 게 졸업하고 나서야 빛을 봤다. 학교에선 독서보다 태도와 성적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독서는 내게 간접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자 지혜의 장이다. 그 속에서 논쟁을 하고, 배움을 얻고, 쉬어간다.


사회복지사는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칠 수 있는 일을 한 번 더 보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전문 지식을 보태는 과정.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어서다. 그게 우선이 되고 나서야 나와 비슷한 대상자를 만났을 때 동요가 적었다. 덜 힘들고, 덜 흔들렸다.


좋은 것만 채우고 싶은 그 마음. 불쑥 찾아오는 아픈 기억을 밀어 내고 싶은 마음. 분명 책에서 읽었는데, 사회복지를 하고 있음에도 약하고, 분하고, 억울한 내가 나온다. 때마다 좌절하고, 위로하고, 용서한다. 잊고 싶은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서 또 찾아올 거라고, 그때마다 나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빨리 보내주자고.


아이는 때리지 않고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증명할 수 있다. 공포에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 그 순간이 오면 돌이킬 수 없다. 더는 무서울 게 없다.


사는 동안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좋은 갈등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어떤 다툼은 어른의 권위로 정리하지 않았다. 논쟁하고, 토의하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겪어내는 게 중요했다.


도덕 기준이 높아서 피로한 삶을 살고 있다. 100% 순수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있으니 죄책감을 느끼는 거다. 그래서 의식하고, 인지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당장 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다른 사람 생계를 신경쓸 정도라 평범하지 않다는 말을 최근까지 들었다.


그렇게 남 일에 관심이 많아서 괜찮냐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며 뭘 할 수 있냐는 말도 들은 적이 있는데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분노하는 게 연대하는 거라고 답했다. 화가 많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맞다. 나는 화가 많다. 미운 일 투성이인 세상에서 잘 살아 보고 싶어서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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