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왜 캄보디아 아빠는 나를 버렸을까요?"

"돼지 밥 줘야 해서요."

by 임래청
이제 아빠라고 불러도 괜찮아

"아빠, 왜 캄보디아 아빠는 동생과 나를 버리고 떠났을까요?" 밤 9시, 휴대전화 진동과 함께 날아온 이 한 문장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리더들과 매월 마지막 주일 예배 후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리더들 본인의 돈으로는 사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다. 하루 일당이 3~5불인데 한 끼에 7~10달러 하는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한국으로 치면 대학생이 편의점 알바를 하루 종일 하고도 밥 한 끼 못 사 먹는 상황과 비슷하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1.25불에서 2불 사이인 곳도 있지만, 3~5불이나 하는 곳도 많다. 그러니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호사는 선교사와 함께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20230528_131841.jpg 오른쪽 첫 번째 쿤띠아

나와 아내는 이때 리더들의 상태를 살피며 자연스럽게 상담도 한다. 한참 깔깔거리며 11명의 리더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막내 쿤띠아가 말을 던졌다.

“목사님, 저 먼저 집에 가봐야 해요.”

“조금 더 있다가 가지,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웃으며 물었다.

“돼지 밥 줘야 해서요.”

“아니, 돼지 밥은 아빠가 주면 되는 거지, 여자인 네가 가서 준다고?”

“아빠가 없어요. 집 나갔어요.”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빠 돌아오면 돼지 밥 주시겠지. 더 있다가 같이 가자.”

리더들 11명이 모두 한 동네에 살기 때문에 같이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쿤띠아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아빠 집에 안 와요. 집을 나갔어요. 다른 여자를 만나서요.”



지난주 교회에서 만나 인사까지 나눴던 쿤띠아의 아버지였기에 믿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카페 창밖의 바나나 나무를 바라보는 쿤띠아에게 나는 장난삼아 한마디를 건넸다.

“그럼 내가 네 아빠 해줄까?” 쿤띠아는 “네, 좋아요”하며 미소를 지었다. 리더 중 하나인 티어리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모두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화면 속 ‘입양아, 아빠’라는 글씨가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호안이 거들었다.

“아빠! 하고 한번 불러봐.”

쿤띠아는 수줍은 얼굴로 “오빠”하고 불렀다.

호안이 큰 눈을 뜨고 깜짝 놀라며 “오빠가 아니고 아빠! 파더라고 해야 해” 우리는 다시 까르르 웃었다.

“그래, 이제부터 쿤띠아는 내 딸이야. 저기 사모님에게도 엄마라고 해봐.”

쿤띠아는 “엄마”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캄보디아 땅에서 예기치 않게 영적인 자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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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개월이 흘렀을까? 밤 10시경 쿤띠아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빠, 왜 캄보디아 아빠가 저와 여동생을 버리고 떠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응... 지금은 아빠가 많이 보고 싶고 또 미울 거야. 지금은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들거야. 하지만 네가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다 보면 그때는 알게 될 거야. 집을 떠난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캄보디아 아빠도 마음이 힘들고 너희가 많이 보고 싶을 거란다. 예쁜 딸 사랑해.”


나는 쿤띠아의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결혼을 일찍 한다. 그리고 크메르 사람들은 첫사랑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나이가 어려도 첫사랑과 바로 결혼하고, 시간이 흘러 그 뜨거움이 식으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사역하며 알게 되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쿤띠아는 카페에 근무하면서 주일날 초등부 예배에 반주를 하고 있다.

우리부부는 어린 쿤띠아가 훗날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서울에 있는 두 딸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쿤띠아는 매 주일마다 어린이 예배때 예쁜 모습으로 반주를 한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