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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Nov 26. 2021

MZ세대, 제 표정으로 살아갈래요

Life in Canada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신청은 어떻게 하는 거야?"


캐나다 스쿼미시 시간으로 이른 아침.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시끌시끌한 저녁은 저물어 대부분은 자고 있는 시간대인 한국 시간. 보통 한국 친구들이 카톡을 보내는 시간은 아니었다. 맥주집을 운영하고 있는 B는 가게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시간대였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던 B. 열아홉 어린 나이에 사회라는 곳은 차가웠다. 집과 떨어져 회사가 지원해주는 숙소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교대 근무였기에 불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졌다. 더불어 직장 내 따돌림까지 당하면서 스트레스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쌓여갔다. 이 상황에서 불면증은 덤이었다. 이 모습을 본 부모님은 딸을 살리려는 심정으로 B에게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B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맥주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쳤다. 장사가 잘 됐다. 단골손님도 생겨 일정한 수입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생활이었던 집은 플러스의 삶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일을 하다 보니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바쁘다 보니 신경이 날이 서있는 경우가 많았고 가족이다 보니 날카로운 말들이 쉽게 오갔다. 날아오는 비수 같은 단어들은 B의 가슴에 콕콕 박혔다. 


손님으로 오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대학 다니고, 여행 다니면서 청춘을 즐길 때, B는 가게 안에서 청춘을 소비해야 했다. 이십 대 초반에 시작했던 일이 벌써 이십 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여러 감정이 끓어오르려는 찰나 부모님께서 가게 명의를 B의 이름으로 바꿔주었다. 인테리어부터 가게 이름, 메뉴판까지 B의 손길로 꾸며졌다. 물론 옆에 부모님이 계셨지만 B만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사장되었다.


새롭게 단장한 가게. 프랜차이즈 가게들로 가득한 골목에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게는 잘 되었다. 아름다운 꽃에는 벌레들이 많이 꼬이는 것처럼 진상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술을 파는 맥주집이다 보니 술 취한 진상들이 많았다. 성희롱은 기본이었다고 한다. 아빠뻘로 보이는 사람이 번호를 물어보는 진상, 손을 터치하는 진상과, 손을 끌고 가는 진상까지. 


나이와 결혼 여부 등 개인적인 질문들까지 서슴없이 물어봤다. 나이를 말하면 "그 나이 먹고 테이블이나 닦고 있네ㅋ"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진상도 있었다. 하지만 사장이기에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일을 나갔다. 공간을 연다는 것은 공간에 갇힌다와 같은 의미였다.


B는 가게에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웃음을 지어도 감정은 없었다. 과연 이곳에서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는 아팠고, 미래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해답이 없는 고민들로 잠들기 어려웠다. 컴컴한 방 안에서 어둠을 바라보고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매출은 반의 반토막이 나기 시작했고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었다. 



가게의 단골이었던 나는 B와 친구가 되었다. 쉬는 날에 종종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여장부로 보였던 B는 아주 여린 친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쌓인 상처들과 가게를 하면서 생긴 상처들이 B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상처들이 많았기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저 같이 맥주를 마시며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B에게 지금 일하고 있는 공간만이 너의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십 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같은 고민과 싸우고 있으면 환경을 바꿔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용기를 내면 나는 그 용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B가 나에게 워킹 홀리데이에 관한 카톡을 보냈을 때 나는 성심성의껏 답장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물론 이곳에 온다고 해서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언어적인 부분, 음식, 타지 생활 등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내 친구 B가 캐나다를 올 수 있다면 이곳에서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이 쌓이는 삶이 아닌 마음은 편안한 삶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선 넘는 질문이나 간섭은 없는 삶. 


B에게 이곳에서의 삶은 조금 다른 표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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