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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19. 2023

동물들의 루틴/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

2023.5.18

영국에 이사 와서 50년대 지어진 비교적 오래된 집을 샀다. 영국사람들은 지은 지 오래된 집을 더 선호한다. 오랜 세월 견고함이 유지되었고, 하자등이 꾸준히 보수되어 왔기 때문에 사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구조는 원하는 대로 공사해서 바꾸면 되니 검증되지 않은 신축보다 가격도 더 비싸고 더 많이들 찾는다. 또 장점 하나가 옛날에 지은 집들은 보통 정원이 크다. 신축 주택은 주어진 공간에 최대한 많은 집을 짓다 보니 정원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작은 편이다. 그리고 집들이 사방에 지어져 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기 힘들다. 우리 집은 옛날에 지어진 집으로 정원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동물들이 시간대별로 참 다양하게 포착된다. 지금까지 고슴도치, 족제비, 다람쥐, 여우, 도롱뇽과 newt와 그 밖의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우리 정원을 찾고 있다.

그런 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나름의 루틴들이 정해져 있는 듯해서 신기하기도 하다.



다람쥐

오후 4~5시 사이 우리 집 정원을 찾아오는 다람쥐 한 마리. 어김없이 매일 찾아온다. 정원에서 새들을 재빠르게 좇아가기도 하고, 큰 자작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기다가 옆집과의 긴 담장 위를 실컷 달리다가 다른 곳으로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작은 아이와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 동네 초입 도에 교통사고를 당해 객사한 다람쥐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딸아이는 혹시 우리 집에 늘 찾아오는 다람쥐가 아닐까 걱정을 했다. 그날은 뭐 하느라 바빠서 정원을 내다보지 못했는데, 다음날 어김없이 제시간에 다람쥐가 우리 집 정원에 나타났다. 이층에 있는 딸아이에게 소리쳐주었다.

'우리 다람쥐가 아니야. 얘는 지금 와서 신나게 놀고 있어'

요즘엔 아침에 오는 다람쥐 한 마리가 늘었다. 같은 놈인가 싶어서 유심히 봤는데 오후에 오는 다람쥐보다는 작다. 두 다람쥐의 하루 루틴에 우리 집이 포함되어 있어서 영광스럽다.


갈매기

시험 감독을 하는 교실이 2층이다. 교실 밖에는 학교식당이 있다. 오후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어디서 인지 하얀 갈매기들이 10여 마리 나타난다. 정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바다 위의 하이에나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학교식당에서 음식을 사가지고 나와 먹으면서 흘린 부스러기들을 먹으러 오는 거다. 이번 주 내내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마릿수의 갈매기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이 갈매기들은 왠지 우리 동네 학교들의 식당 주변을 돌아다니는 루틴이 있는 듯하다.


여우

골칫거리 여우! 하루도 빠짐없이 밤이 되면 여우들이 우리 집 정원에 나타나 곳곳에 응가를 해놓고 간다. 잡식이라 그런지 응가 냄새가 고약하다. 텃밭 중간에도 떡하니 싸놓고, 잔디밭, 부엌 외부 문 계단 등등. 아침이면 여우똥이 있는지를 살피며 정원을 걸어 다녀야 한다. 딸아이는 정원에서 핸드 스탠드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기 전 마쳐야 하는 의식이란 여우똥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오이 모종 심어 놓은 그로우백을 찢어놓고 흙을 다 헤집어 놓았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쓰레기차가 온다. 보통 쓰레기 통을 전날 밤에 내놓는데 그날밤엔 여우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로열달의 '미스터 판타스틱 폭스'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왠지 신나게 어깨동무하고 나타나 주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쓰레기통을 엎질러 놓을 것만 같다. 핸들을 돌려 잠가놓는 음식쓰레기통을 귀신같이 열어서 다 뒤집어 놓는다. 간혹 벽돌로  위를 눌러 놓아도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몇 마리가 협공하면 그까짓 벽돌 하나쯤은 거뜬히 걷어내는 듯하다. 아침 등굣길에 우리 동네 쓰레기통 한두 개는 꼭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나도 몇 번 당하고는 수요일 아침에 일찍 쓰레기통을 내놓는다.


동물들의 루을 파악하고 이렇게 두뇌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 by 양인모(바이올린)+용재오닐(비올라)

델이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파사칼리아를 노르웨이 작곡가 할보르센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곡으로 편집했다. 이곡은 '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라고 부른다. 거리를 걷는다는 의미의 파사칼리아는 행진 무곡이라 불린다. 보통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조합으로 연주되나 첼로대신 비올라로 연주되기도 한다. 화요일밤 우리 마을 거리를 활보하는 여우들을 생각하며 들어 보았다. 

https://youtu.be/coFxZieky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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