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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11. 2023

당장 도시락은 어떻게 싸주나...

처음 영국에 와서 두 아이 다 학교 급식을 하루 체험해 보고는 다시는 학교 급식 먹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한국에 살다가 영국으로 온 아이들 중에 급식에 잘 적응해서 먹는 아이들도 있는데 참 유난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의 학교 급식과는 비교 불가이긴 하다. 아이들이 워낙 한국 학교 급식을 좋아했었다. 집에서 보다 밥을 잘 먹었으니 말이다. 어쩌겠는가... 아이들이 급식을 먹지 않으면 영국 아이들과 비슷하게 도시락을 싸줄 수밖에..


다행히 B는 일주일 내내 햄샌드위치를 싸가던 아이였다. 햄, 브리치즈와 양상추를 넣은 샌드위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해서 큰 아이에 비해 도시락 싸기가 훨씬 수월했었다. 그래도 나름 빵 종류를 식빵, 바게트, 베이글, 치아바타 등등으로 바꿔가며 일주일 내내 햄치즈 샌드위치를 싸준 적도 있다. 큰 아이가 음식에 금방 질려하는 스타일이라 슈퍼에 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없나 찾아보고 고민했는데 이젠 전세가 역전 되었다. 그동안 도시락 메뉴는 햄샌드위치, 치킨토르티야, 소세지롤, 베이컨샌드위치 등등이었다.  가끔 볶음밥도 싸줬지만 음식 자체가 향이 강하면 아무래도 가방 전체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제 그것마저도 옵션에서 제외다.


B는 채식을 선언만 했지 본인이 힘든 일은 거의 없다. 육류를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직접 육류 없는 장을 봐야 하고 그것으로 일주일 식단을 짜야하고 도시락까지 싸줘야 한다.

당장 도시락을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싸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몇 달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몇 가지 대안을 찾았다.

 - 잼치즈 샌드위치(체리잼+체다치즈 슬라이스)

 - 채식 라비올리(호박이랑 잣이 들어간 라비올리)

 - 마마이트 오이 샌드위치(마마이트는 여러 가지 야채를 졸여서 조청처럼 만든 것)

 - 토마토파스타

 - 할루미치즈 토르티야

 - 마가리타 피자

 - 모차렐라 치즈스틱

 - 뇨끼 튀김 샐러드(뇨끼를 노릇하게 튀겨서 올리브유와 메이플시럽 넣고 샐러드처럼 만듦)

 - 야채 크로켓(크로켓 빵 안에 으깬 감자 샐러드 소를 만들어 넣고 오븐에 구움)

 - 야채만두 튀김 등등


문제는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도시락 3개를 준비한다. 나까지 출근하는 날이면 도시락이 총 4개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종류의 도시락을 싸간다. 남편은 본인이 알아서 전날 밤 샌드위치를 싸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남편을 위해 내가 준비해 주는 것은 삶은 계란 한 개, abc 주스(양파+당근+비트 찐 것과 사과를 갈아 만듦) 한 잔과 아침에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주면 끝이다. 그리고 B의 도시락을 싸고, 큰 애의 도시락도 따로 싼다. 정신없이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주고 나면 정작 내 도시락은 아주 간단하다. 바나나 하나, 사과 하나, 에너지바에 아무거나 빵 한 조각 싸는 게 다다. 거기다 아이들 아침까지 준비해서 먹여야 하니, 아침 시간은 일분일초가 긴박하게 돌아간다. 이런 아침에 남편은 부엌에서 나만 졸졸 따라다니온갖 수다를 늘어놓는다... 간단한 것은 들어주지만 가끔 정치, 사회, 경제 얘기도 하려고 하면 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 그럼 조용히 알았다고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보통 B의 도시락은 메인 메뉴 하나, crisp(감자칩 : 영국 사람들은 보통 샌드위치를 먹을 때 짭짤한 감자스낵을 같이 먹는다. 처음엔 이해 안 됐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먹어야 샌드위치가 더 맛난 것 같다) 한 봉지, 작은 오이 한 개, 초콜릿종류 한 개 정도이다. 그래도 매일 배가 고프다고 난리이다.


가끔 햄샌드위치 맛이 그립다며 아련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절대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본인도 안다. 채식이 육식에 비해 아주 맛있지는 않다는 것을... 채소요리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채식을 선언하였으니 채식에 맛을 들이려고 매우 노력 중이다. 그래서 요즘엔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채소 요리를 먹고 있다. 나름 음미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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