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아이가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아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내장까지 토할 듯 깊고 거칠게 내쉰다. 5분 남짓 짧은 시간에도 몇 번을 반복한다. "왜 그래? 게임이 잘 안돼?"하고 묻자 "이렇게 하면 시원해"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슨 걱정 있어?"하고 물어도 "자꾸만 이렇게 돼~"하며 스스로도 답답해한다.
처음에는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약 한 달이 되어간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소아과에 데려갔더니 코를 살펴보고,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보고는 "코는 약간의 비염이 있긴 한데, 우선 처방받은 비염약을 다 먹어보고도 차도가 없으면 '틱'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소아과에 가기 전에 '아기 한숨', '6살 아이 한숨'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던 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요즘 뭐 변화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는지도 물으셨다.
약 한 달 전, 가족여행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아이는 한숨을 쉬지 않았다. 잘 놀고 돌아왔는데, 문제는 그 뒤로 여러 가지 스케줄이 잡혀있었다는 점이다. 첫째는 우유 경구유발검사였다. 알레르기 면역치료를 하기 위해 검사를 예약해두었는데, 날짜가 미뤄져 여행을 다녀오고 약 2주가 지난 뒤가 검사일이 되었다. 우유를 먹었다가 여러 번 아나필락시스를 겪었던 아이인지라, 우유를 먹여보는 이 검사가 극도로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 엄마인 나도 잠을 못자고 위장이 멈춰 하루를 꼬박 굶을 정도로 긴장했으니,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생각해 검사를 하러 가기 약 2주 전부터 슬쩍 언질을 해두긴 했다. 아마 그 검사에 대한 두려움이 한숨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로 생각되는 것은 바로 학교 상담이었다. 당장 초등학교에 가면 알레르기에 대한 케어를 스스로 해야 되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므로 걱정이 컸다. 때문에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열려있고, 선생님들도 응급 상황 시 에피네프린 주사 사용법을 주기적으로 교육 받는다는 국제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제 7살이 되었으니, 국제학교 입학 시기면 올해 9월에는 입학을 해야 한다. 때문에 집에서 가깝고, 해외 체류 경험이 없어도 입학 가능한 국제학교 두 군데를 예약해 투어 및 상담을 받았다. 아이가 다닐 학교니 직접 데리고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아이 입장에선 당장 오래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그곳으로 입학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던지 "엄마 난 학교 가기 싫어. 무서워"라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지금 가는거 아니야. 어린이집 계속 다닐거고, 앞으로 어린이집 졸업하면 다니게 될 학교들을 선택하려고 구경하러 가는거야"라고 말해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그러더니 결국 한숨이 더욱 심해졌고, 의사선생님께 '틱'일 수 있으니 일단 두 세달 기다려 보고 차도가 없을 시 정신과를 방문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아이의 알레르기 케어, 국제학교의 비싼 학비, 일반 초등학교를 진학할 경우 겪게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앞으로 진행할 면역치료 등 여러 가지를 두고 고민하느라 마음이 복잡해 정작 내 아이를 똑바로 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새로운 환경, 변화에 아주 민감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인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써야 하는 국제학교로의 진학이 얼마나 더 버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을까.
남편과 주말 내내 열심히 상의한 끝에, 결국은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국제학교로 진학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겠지만 그만큼 집에서 좀 더 거리가 있다는 점, 만약 한국 학교로 다시 리턴할 경우 아이가 또 다시 적응하느라 고생할 수 있다는 점, 외국 대학교까지 진학할 경우 우리 부부의 노후대비 및 우리 가정의 경제사정이 많이 버거워질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현재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어 더 이상 추진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아이는 사랑해주려고 낳는거라는 말을 들었다. 잘 키워주려고, 잘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사랑해주고, 아이가 부모를 사랑해주면 이미 서로의 몫을 다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를 계기로 당연한듯 여겨지던 초등학교 진학을 여러 갈래로 고민하느라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는 분명 남들보다 더 나은 길, 더 잘나 보이는 길로 가게 해주고픈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집 가까운 초등학교에 마음 편히 보내되 내가 좀 더 신경써서 도시락을 챙겨주고, 아이가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주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재빨리 달려가주는 방법이 아이가 원하는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살피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