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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 Expat Oct 24. 2021

20대. 기회는 지금뿐이다

20대는 인생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 시작의 두려움, 젊음의 자신감, 자유에 대한 갈망이 혼합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부풀어 있다. 20대의 어느 날, 자유로움과 두려움을 양손에 하나씩 쥔 채 배낭을 메고 인생의 방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스무 살의 나도 그랬다. 희미하게 돌아보면, 침낭을 끼여 넣은 20킬로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나던 내가 김포공항에 서 있다. 3개월 동안 '세계를 간다. 유럽 편' 여섯 권을 독파하여 45일간 일정을 빼곡히 적은 수첩을 작은 가방에 챙겼다. 목걸이 지갑에 여권과 여행자수표를 넣고, 바지 안쪽에 작게 만든 주머니에 비상금을 넣었다. 첫 비행, 앵커리지 연착으로 무려 22시간이나 걸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같은 비행기를 탄, 모두들 거의 첫 여행이던 언니, 오빠들을 따라 숙소에 도착한 다음날, 텐트 안 건너편 침대에 웃통 벗은 서양 남자가 부스스 일어났다. 눈이 동그래졌다. 런던의 2층 버스에서 부서지는 햇살 속 버킹검 궁 군인을 바라보았고, 폭풍의 언덕처럼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에든버러행 밤 버스를 타고 여행했다.  


여행의 기술!


첫 여행국인 영국에서 일주일간 실전 연습을 통해, 일생의 긴 여행 동안 필요한 모든 여행의 기술을 배웠다. 영어를 못해도 여행할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 교통편 확인하기, 토마스쿡 기차 시간표 읽기, 지도 보기, 목적지 찾아가기, 숙소 예약하기, 슈퍼에서 쇼핑하기, 같은 방향 동행 만나기, 아름다움에 감동하기, 배낭여행에 필요한 기술은 이게 거의 다였다. 먹고, 자고, 구경하고, 동행을 만나고,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 살아보니 인생도 비슷하다. 인생에서 우리가 꼭 필요한 것,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일주일 후 도버해협을 건넜다. 비행기에서 만난 동행들은 한 명씩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유레일 티켓 한 장을 달랑 들고, 문화의 향연이 도처에 넘치는 유럽의 도시를 여행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아름다운 녹색의 성

브뤼헤 돌길 위 초콜릿 가게의 향기

암스테르담 자전거 여행의 치즈 냄새

북유럽행 실자라인 여객선,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던 북한 사람들

하필 입구에서 망가진 선글라스를 들고 쩔쩔매던 독일 나체 공원

물가 비싼 북유럽에서 낮에는 도시를 구경하고 삼일 연속 타던 밤기차

물가 싼 헝가리 부다페스트 맥도널드에서 사 먹고 좋아하던 햄버거 세트

뮌헨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노이슈반스타인성

알프스산을 걸어 마지막 할인 열차를 타고 올라간 스위스 융프라우의 얼음궁전

황홀한 비췻빛의 카프리섬 푸른 동굴

새벽기차를 기다리던 스페인 기차역에 펼쳐진 밤의 놀이공원


30년도 넘었지만 그 모든 기억들은 스무 살 청춘의 한 페이지로 고이 기록되었다.  


한 달 반 뒤 파리에서 여행을 끝낼 때쯤, 도착할 때 어리버리하던 스무 살의 앳된 나는 조금 더 똘똘하고 여행이 편안한 다른 스무 살로 변해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 후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여행이 별거인 시대였지만, 해보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많이들 경험하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별 거였다. 먼 곳을 보아 버린 갈매기 조나단처럼, 그 한 달 반은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기 버거웠던 많은 이십 대처럼, "뭔가 다르고 책도 많이 읽겠네" 정도로 지원했던 문헌정보학과 대학생은 일 년이 지난여름, 러시아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왜 하필 러시아를 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간단했다. 다음 여행지를 고르던 중, 아직 많은 사람이 가보지 못한 러시아가 마침 철의 장막을 걷고 있었다. 페레스트로이카. 당시 외국인에게 이중 규정을 적용하던 러시아는 외국인으로는 여행도 힘들고 비용도 비쌌다. 두어 달 여행을 준비하던 나는 일 년 언어연수로 방향을 수정했다. 두세 달 여행이나 일 년 언어 연수나 비용에서 큰 차이가 없었고 외국어도 배우니 꽤나 좋은 계획이었다.


영어 못해도 여행할 수 있지만,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며 여행하려면 외국어는 한 개쯤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좋아하지도, 남들에 비해 잘하지도 못했던 영어 대신, 철의 장막 너머의 언어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러시아어는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학생 때가 아니면 다시는 여행하지 못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떠난 모스크바에서 3년을 보냈다. 러시아어학과로 편입하여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무역회사에서 일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2년간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20대가 훌쩍 지나갔다.  


20대의 여행. 가슴벅찬 설레임


처음 하는 것이 정말 많은 나이, 20대는 여행도, 사랑도, 다른 문화도 처음이었다. 

처음이니 두려웠지만, 처음이니 가슴 벅차게 설레었다.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처음이라 겁도 없었다. 

20대의 여행은 더 두려웠고, 더 많이 실수했지만, 그러므로 더 많이 배웠다.


익숙한 세계와는 다른 곳에 낯선 사람들의 존재를 보며,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만나서 즐겁게 길을 가다 웃으며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며, 혼자라도 괜찮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때론 웃으며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랑도 있었지만, 지나 보니 차라리 잘 된 일도 있다는 것도 배웠다. 

하루하루 새로운 도시에서 눈을 뜨며, 어떻게든 될 거라는 자신감도 배웠다. 

20대의 여행에서 얻은 배움으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천천히 심호흡하며 나는 많은 길을 선택했다.


세상의 모든 선택에 공짜는 없으니 포기한 것도 많았다. 

20대에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지 못했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도 못했다.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 펼쳐진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 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20대의 설렘으로 여행에서 느꼈던 감동도, 배움도 없었을 것이다. 

30대부터 여행의 설렘은 조금씩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별로 감동이 안 된다는 가슴속의 투덜거림도 들렸다. 

팅커벨의 마술 가루가 효력을 잃고 피터팬은 점점 철들기 시작한 것이다.

20대의 그대들. 여행 그리고 인생의 설렘을 두 팔 벌려 즐겨라.
기회는 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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