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는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장 많은 시기다. 긴 교육과 훈련을 거쳐 서툴고 낯설게 시작한 일도 몇 년이 지나면 인정받고, 나름의 전문가가 된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내서 일하다 보면, 지루한 날도 있고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도 같지만, 선택한 견고한 환경 안에서 행복하기도 하다. 30대는 20대보다 여유롭게, 정리된 가벼운 배낭을 메고, 슈트케이스를 끌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조금 더 커진 자신감을 가지고 길을 바라본다.
20대 직장생활을 해 보니, 이윤창출보다 공공분야 일이 적성에 맞았다. 30대 초, NGO에서 일을 시작했다. NGO는 사람이 귀해 다양한 일을 했다.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인간관계도 수평적이어서 스트레스도 적었다. 물론 받는 돈도 적었다. 즐거웠고, 많이 배웠고, 평생의 친구들도 생겼으니 돌아보면 최고의 직장이었다.34세, 일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배운 것도 많았지만 뭔가 또 부족했다. 영어가 싫어서 러시아로 떠났지만 좋아하는 국제관계일에는 영어가 필요했다. 어느 정도 장학금을 주는 미국의 대학원 합격 메일이 오자, 가방을 꾸렸다.
괜히 떠났나?..미국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이민가방 두 개를 끌고 버스에 올라, 어느 정류장에서 또 한 번 갈아타고 숲 속 캠퍼스에 도착한 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일이나 열심히 할 걸 그랬나?" 잠이 오지 않았다. 눈물도 났다. 하지만 곧 실망스러웠던 버몬트의 작은 마을 브래틀보로의 캠퍼스는 내게 그리운 안식처가 되었다. 시골 생활은 해본 적 없던 내게 미국의 생뚱맞은 촌구석 삶은 호흡처럼 자연을 배우고 느끼는 경험이었다.
봄이면 연초록 터널을 만들던 고요한 숲길.
여름의 짙푸른 초록 그늘의 시냇물.
낙엽으로 온산을 덮던 뉴잉글랜드의 가을.
아이처럼 미끄럼을 타던 설국.
그 작은 캠퍼스를 나는 무척 사랑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남미!
30여 개국에서 온 친구들과 서로 다른 문화와 의견을 토론하며, 알바도 부지런히 주 20시간을 채웠다. 코스웤을 끝내고 논문을 준비하며, 남미 여행 기회를 찾았다. 한국에서 남미는 참 멀지만, 미국에서는 몇 시간 거리였다. 1월 어느 날, 몇몇 학생들이 베네수엘라 까라카스에서 열리는 2006년 사회포럼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금이 아니면 못 할거야, 아마도 나중에는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또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방향 삼아 길을 떠났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보스턴에서 이제는 정말 가기 힘들어진 까라카스행 300불짜리 비행기 편도 한 장을 들고 난 또 길 위에 섰다.
그동안 크고 작은 여행을 많이 한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므로 가벼워졌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지만, 5개월 장기여행에여행책 한 권도 넣지 않았다. 출발 전 스페인어 수업을 2주 듣고, 근처 할인점에 가서 작은 끌랑과 스포츠용 샌들을 하나 샀다. 그 여행 내내 나보다 작은 가방을 든 여행자는 만나지 못했다.
30대 여행 한 장면에는 지난밤 홍수로 시내로 가는 다리가 무너져 카라카스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있는 포럼 참가자들이 있다. 그 사이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을 찍는 내가 있다. 치안문제로 항상 긴장했던 까라카스의 포럼을 마치고 친구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남쪽으로 세상에서 제일 길다는 엔젤 폭포를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30대의 여행. 자연의 향연!
그 5개월의 남미 여행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한 페이지로 남았다. 남미는 가는 곳마다 흘러넘치도록 아름다웠다. 가난하지만 어디서나 춤추고 웃는 행복한 사람들, 흥청거리는 음악, 어디든 나타나는 좀도둑, 화려한 도시와 빈민가의 대조, 다양한 원색의 색감들이 주는 생기, 용광로처럼 뒤섞인 문화, 너무도 강렬하고 눈물 나게 경이로운 자연들이 도처에 펼쳐졌다.
베네수엘라 엔젤폭포를 향하던 보트에서 바라 본 장엄한 계곡과 거대한 바위산,
촘촘한 해먹에 사람들을 싣고, 삼바 음악과 함께 아마존 강을 떠내려가던 여객선,
레시페, 살바도르, 리오데자네이로 카나발 군중들의 도취된 흥분,
제리코아코아라의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해변과 모래둔덕의 황홀한 석양 ,
리우 데 자네이로의 미항과 공존하는 빈민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 카페,
세상의 끝 우수아리아의 고요한 국립공원,
지구밖에 존재할 것 같은 숲과 산을 간직한 또레스 델 파인,
봉우리 속에 숨은 푸른 호수, 끝없는 빙하의 산,
와인의 도시 멘도사,
페루의 마추픽추, 사막의 오아시스 이까,
볼리비아의 고산 위 국립공원, 소금 사막,
콜롬비아 보고타의 살사까페
카르타헤나 해변의 레게머리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문화 그리고 비현실적인 자연의 풍경 앞에서 나는 황홀하게 압도되었다. 동서유럽, 구소련, 북미, 중동의 몇 나라까지 여행했으니, 큰 차이가 있을까 했던 남미 여행은 자연의 경이 앞에 무한히 작아지는 인간으로서의 여행이었다.
20대는 박물관처럼 남아있는 도시의 역사에 매료되었다면, 30대는 광대한 자연의 향연에 압도되는 여행의 나이였다.
길은 어디서든 열린다!
남미 여행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코이카 전문가 면접으로 급히 귀국했다. 이후의 30대는 일을 하며 여행했다. 코이카의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계약체결, 사전조사, 현장점검, 사후평가를 위해 정장을 입고 노트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으로, 뜨거운 정오 30대가 지나갔다.
30대의 여행은 20대부터 쌓아온 경험, 이젠 뭔가 알 것 같은 자신감으로 조금은 여유롭고 가벼워졌다. 20대처럼 꽉 짜인 일정도 없었고 맘에 드는 곳에서 며칠 여유도 부렸다. 학교 친구를 방문하기도 하고, 외국 친구들과도 편안하게 대화했다. 20대에는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욕심껏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30대에는 여행을 음미하려면 덜 서두르고, 덜 욕심부려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깨우쳤다.
30대는 때때로 실패가 뼈아프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고, 지루하고, 이룬 것 없이 막막하다. 철없이 쉽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수도 없다. 그 나이에 다시 떠남을 선택한 나는 30대에도 역시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데 실패했다.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계약이 끝나 실업자가 되기도 했다. 20대에는 꽤 뜨거운 연애도 했는데, 30대에는 그리 뜨거워지지도 않았다. 미지근한 결혼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많은 실패들이 꽤나 고맙다.
실패했을 때가 또 떠날 수 있는 핑계가 되었고, 혼자라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실패할수록, 가진 게 없을수록 떠나기는 좋았다.
그만두기 아까운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미지근한 결혼을 했더라면,
아마도 떠나는데 더 많은 망설임과 계산을 했어야 하리라!
다른 환경에 나를 던져 여행하다 보면,
길 위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열리곤 했다.
넓은 길도, 자갈길도, 재밌는 길도 열렸다.
걷다 지루하거나 힘들면 또 다른 길을 떠나고, 두리번거리며 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