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컵 안녕

by 리나

드라마에선 육아의 고단함을 잔뜩 쌓인 젖병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나는 빨대컵으로도 비슷한 걸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빨대컵의 빨대를 하나하나 나눠서 가는 솔로 씻는 건 생각보다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첫째와 둘째 둘 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물을 마셨다. 아기 때는 목마른데 물 안주는 걸까 봐 전전긍긍하며 수시로 입에 가져다주었다면 둘 다 많이 큰 지금은 물 마셔라는 말을 하며 챙긴다. 이러나저러나 물 챙기기가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인 건 아이가 태어나고서부터 쭉 변함이 없다.

"물 마셨어?", "목말라?", "물 줄까?" 나는 아이들이 목마를까 봐가 왜 이렇게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아기가 물을 컵에 마시기까지는 나름 겪어야 하는 단계가 있다. 젖병에서 빨대컵으로 가는 과정이 1단계라면 빨대컵에서 그냥 컵으로 가는 게 2단계다. 다행히도 첫째와 둘째는 둘 다 1단계를 그냥 넘어갔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인 건지 첫째는 빨대를 입에 물자마자 거부감 없이 사용했고 둘째는 하루정도 빨대를 질겅질겅 씹어보긴 했지만 수월하게 넘어갔다. 첫째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 나는 이제 젖병 안 씻어도 된다며 좋아했다. 물만 마시는 용도니까 물로 간단하게 세척해도 되지 않을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며 몇 날 며칠을 물로만 대충 씻었다. 순전히 내 귀찮음 때문이다. 아마 다른 엄마들은 처음부터 하나하나 분해해서 구석구석 씻을게 분명하다. 당연히 얼마 뒤 빨대와 그 부속품에는 물때가 잔뜩 끼어 누렇게 변해있었다. 그때 받은 충격은 정말 엄청났다. 그때는 첫애니까 미안함이 어찌나 크던지 자책감에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지금은 그 정도는 "으아 미안해라 다음부터 조심해야지"이렇게 넘어가겠지만 그땐 그랬다.

빨대의 모든 부분을 작은솔로 정성스럽게 씻어야한다

그날부터 아무리 귀찮아도 빨대컵은 매일매일 아주 깨끗이 씻었다. 아기가 밥 먹으면서도 놀면서도 수시로 마시기 때문에 음식물이 빨대에 끼기도 하고 먼지도 많이 묻어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지저분해졌다. 빨대를 하나하나 나눠서 아주 가는 솔로 닦으며 언제나 컵으로 마시려나를 기대하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첫째는 2단계로 넘어가기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빨대컵에서 컵으로 넘어가는 것도 또 세부적으로 단계가 나눠지는데 그 사이에 유명한 육아 템은 거의 다 써본 거 같다. 뚜껑이 덮여있어 물을 쏟지 않고 마시는 컵, 컵 바닥이 기울어져 있어 아기가 컵을 살짝만 들고도 물을 마실 수 있는 컵 등등 검색하면 엄청나게 다양한 컵을 만날 수 있다. 조금씩 새로운 컵들을 사용하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냥 컵으로 마시고 있는 첫째가 보였다.


그렇게 빨대컵의 고단함을 잊었는데 둘째가 태어나고 이유식을 시작했다. 당연히 빨대컵도 다시 우리 집에 등장했다. 이건 두 번째라고 더 쉽지도 않았다. 그냥 똑같이 귀찮고 잘 챙겨야 하는 그런 존재다. 집에서나 나가서나 매일 함께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첫째 때처럼 다양한 컵으로 단계를 올라갔겠지만 여기서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좀 천천히 컵으로 넘어가지 뭐 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빨대컵만 씻고 있었는데 18개월이 된 둘째가 첫째를 보며 컵으로 마시고 싶어 했다. 처음엔 기대도 안 하고 어차피 물인데 닦지 뭐 하는 마음으로 밥 먹을 때마다 실컷 가지고 놀게 했다. 어쩌다 흘리지 않고 물을 쏟아 버리지도 않고 물을 마실 때는 박수를 치면서 대단하다고 엄청난 리액션을 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이 리액션도 그저 애 기분 좋으라고 한 거지 뭔가를 기대하고 한건 아니었다. 그런데 10일도 지나지 않아서 물을 쏟지 않고 차분히 식탁에 내려놓더니 박수를 쳐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그렇게 그냥 컵으로 넘어갔다.


정말 엄청나게 편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빨대를 조립하지 않아도 되는 것부터 정말 좋다. 아무 컵으로 물을 주면 알아서 마시고 내려놓는다. 나갈 때도 늘 빨대컵을 들고나갔다가 집에 와서 그것부터 깨끗이 씻어 두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거나 들고 가도 다 잘 마신다. 이렇게 빨리 빨대컵과 헤어질 줄 몰랐는데 정말 기분 좋다.

편하다 편해





우리 첫째는 여기 오고 나서부터 스스로 컵을 꺼내서 마신다.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님이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컵을 두고 나서부터 하루가 편해지셨다고 해서 똑같이 따라 해 본 결과다. 목마르다고 할 때마다 컵을 꺼내 주곤 했는데 스스로 하니 생각보다 일이 훨씬 많이 줄어든다. 아이도 직접 원하는 컵으로 원할 때마다 마실 수 있어 훨씬 좋아한다. 그분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둘째도 이제 컵을 시작했으니 조금 더 크면 누나처럼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나는 이제 물 마시라고 말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