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지리를 잘은 모르지만, 지도책에서 오늘 가게 될 아라스라는 도시가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들에 비해 꽤 큰 도시라는 말을 들어서, 부활절을 보낼 겸 3일정도 도시에 머물기로 했다. 휴가라는 것이 일상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한다면,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지금 우리의 일상의 의무는 걷기였기 때문에, 한 도시에 머무는 이번 3일은 부활절휴가인 셈이었다. 사실 이미 프랑스에 들어 온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작은 시골 마을들을 다니고 길을 걸을 때는 거의 아무도 만날 수 없었기에 프랑스에 온 건지 충청도에 온 건지 실감이 잘 안 났는데, 꽤 큰 도시에 가는 만큼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 온 느낌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산책을 좋아하시는 한 이웃분이, 아라스로 가는 길 20km 정도를 길을 알려줄 겸, 함께 걷고 싶다고 하셔서 약속시간에 맞추어 짐을 싸 성을 나섰다. 아무리 산책을 좋아하신다지만 왕복 40km를 걷겠다고 하시는 것이 의아했다. ‘윌리를 찾아라’에 나올 것 같은 빨간색 하얀색 줄무늬 모자를 쓰고 파란 바람막이를 입고, 등에는 조그마한 배낭을 메고 오셨는데, 동행이 생긴 적은 처음이라 우리 둘 다 처음에는 신나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과연 순례길 고수 존과 마리 부부의 친구시구나, 끼리끼리 논다더니…. 배낭이 우리보다 가볍기는 했지만 연세도 우리보다 훨씬 많으셨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으셔서 발걸음을 맞추어 걷느라,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걸어야 했다.
아저씨가 워낙 다정하셔서 나누는 대화도 좋았고, 안내해주신 길은 넓은 들판에 자그마한 오솔길, 멀리에는 언덕 위의 낡은 성이 보이고 햇살이 아직 비스듬하게만 비추는 이슬 젖은 언덕이 참 아름다워 걷는 길은 상쾌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빠른 속도에 계속 말썽이었던 왼쪽 발목이 아픈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삭은 다행인지 아무 무리없이 잘 따라서 걷고 있었고, 심지어 평소에는 내 속도에 맞추느라 속도를 내보지 못했는데 1시간에 7km정도의 속도로 걷고 있다는 것에 신이 나 보이기 까지 했다. 셋이 걷는데 둘이 아무 무리가 없는 데다가 아저씨랑은 아직 초면인데 아저씨의 산책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프다는 말을 꾹 참고 계속 걸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미 발목을 절룩거리며 걷고 있어, 이삭이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이제야 알아준 것이 서운하기도 한데, 아저씨한테 피해를 드리고 싶지는 또 않아서 한국어로는 “아까부터 아팠어.”라고 죽상으로 이야기를 하고, 아저씨한테는 영어로 “좀 아픈데 괜찮아요.” 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마이너 모국어를 가졌다는 것은 이럴 때 참 편리하다. 아무튼 함께 잠깐 쉰 뒤 다시 걸었는데, 점점 통증이 심해지고 같은 속도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아저씨도 이제 눈치를 채시고 천천히 걷자고 하셨지만 이미 발목의 비명을 무시한 채 2시간에 12km를 주파하며 무리를 한 뒤라 아예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아저씨한테 먼저 산책하시라고 하고 우리 끼리 택시를 부르든, 좀 많이 쉬다 가든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이삭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퉁퉁 부어버린 발목을 보시고는 안되겠다고 하시며 집에 있는 아내를 부를 테니 함께 차를 타고 가자고 하셨다. 만난지 2시간만에 결례도 이런 결례가 없을 텐데, 그렇다고 거절할 처지도 아니라 감사하다고 말씀드렸고, 쉴 곳을 찾기 위해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아저씨는 내 배낭을 대신 메겠다며 자기의 조그만 가방을 내미셨다. 차를 타고 도착한 레진 아주머니는 고생한 딸내미 친구를 바라보듯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Thank you very much, Merci beacoupi(프랑스어로 정말 감사해요), I’m sorry 메들리를 부르고 있는데 아저씨 아주머니는 유쾌하게, 시간도 여유로워졌으니 우리가 바라보며 걷던 언덕 위의 성터에 가보자고 하셨다. 아무리 걷기가 습관처럼 되어 있으시다지만 어느정도 마음먹고 떠났을 아침 산책을 기꺼이 포기하시고는, 본인들은 몇 번은 와봤을 마을의 성터까지 가이드 해주시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치만 그 당시에는 그 분들이 워낙 강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고 계셔서 우리도 강물에 몸을 맡기고 동동 같이 흘러 가보기로 했다.
짧은 성터 관광까지 마치고, 다시 우리의 투어버스, 레진아주머니의 차에 올라타고 아라스로 향했다. 아라스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있는데, 들어가는 대로 초입에 데카트론 매장(아웃도어 아울렛으로 이 때만해도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캠핑계의 이케아로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을 본 이삭이 “앗! 우리 비옷 사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잔누벨 아저씨는 마침 우리도 볼 게 있다고 하시며 함께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필요한 게 있으셨던 건지, 자식들 같은 우리를 위해 끝까지 해 주시고 싶으셨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우리는 온갖 도움을 다 받았고, 우리가 숙소를 소개받기 위해 들린 관광안내소까지 잔누벨 아저씨는 내 배낭을 메고 함께 가셨다.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고, 도움을 받는 일은 도움이 필요한 나의 처지를 인정하고, 자존심을 어느정도 버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이삭에게 화가 나 있는 순간들에는 무거운 것을 들든, 안 열리는 뚜껑을 열든 사소한 모든 일에서 도움받지 않으려 하고, 이삭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기도 화가 나곤 한다고 했다. 너무 많은 부탁을 하는 것은 염치가 없고 무례한 일이지만, 주겠다는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기껏 손 내민 사람에게는 실례가 된다. 잔느벨아저씨와 레진아주머니의 행동들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만난지 2시간만에 저지른 결례의 결과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만난지 2시간만에 주신 친절이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낯선 천사를 만나고 셀 수 없는 도움을 받곤 했는데, 그런 과정들이 세상에는 아직 참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우리가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나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체감케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