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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Oct 13. 2020

맨땅에 헤딩하며 숙소 구하기

Day 17. 프랑스 바뽐므 - 뻬혼느(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비아프란치제나에 오를 준비를 한다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어떻게 숙소를 찾는지일 것이다. 먼저, 인터넷에 조금 검색하다 보면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는 숙소 리스트가 있다. 우리도 그 숙소 리스트를 참조했는데, 가끔 문을 닫은 곳도 있고 번호가 잘못된 곳도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즉흥적인 여행을 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그다음 날의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는 사실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강아지 루루가 있는 숙소에는, 내년 여름에 올 것을 예약한 순례자 분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순례자분은 역시나 철저한 준비성의 민족,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를 찾는데 매일 좀 고생하는 편이긴 했지만, 덕분에 두 번째 방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바로 도착할 마을의 관광안내소, 성당, 마을회관 등에 전화를 걸어서 무료로 잘 곳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며칠 동안은 건너 건너 숙소를 소개를 받음으로써 잘 해결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숙소 리스트를 뒤져보니 성당에 전화해 소개받지 않으면 꽤 값이 나가는 호텔들 밖에 선택지가 없었는데, 성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는 데만 50유로가 넘게 내자니 며칠 전 금융위기가 다시 떠올랐다. 존과 마리 부부가 알려주신 서바이벌 프랑스어를 쓸 때다 싶어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봉쥬흐, 저희는 순례자입니다. 우리가 무료로 잘 수 있는 공공시설이 있나요?”
첫 문장까지는 존이 써 주신 그대로 읽는 거라 어떻게 전달을 했는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네? 어떤 곳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Trop froid. Toit! Toit! 우리 너무 추워. 지붕! 지붕!”

 짧은 프랑스어로 텐트칠 곳만 있어도 된다고, 이 정도 전달하는 것도 용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끊어 버리기 딱 좋은 전화였다. 불쌍하긴 하지만 무례할 수도 있는 오후 3시의 전화에 구청 공무원분은 친절하시게도,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혹시 몰라, 어제의 숙소를 소개해 주셨던 아라스의 마담보 나이께도 전화를 걸어 혹시 뻬혼느에도 아시는 분이 있냐고 여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이 지역의 대모답게 뻬혼느의 부부가 우리를 재워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안도감에 신나 하고 있는데 다시 잠깐 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학교 운동장 같은 곳을 알아봤는데 어렵다고 하고, 괜찮으면 자기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 우리의 첫 ‘맨땅에 헤딩하며 숙소 찾기’ 시도가 두 건이나 성공해, 갑자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르는 입장이 되니 둘 다 엄청나게 흥분했다. 먼저 연락받은 숙소가 있어서 거기로 가겠다고 대답하며,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자기 집 앞마당까지 내어주시겠다고 한 그분께 감사인사를 있는 힘껏 전했다. 

비옷입고 점심을 먹고 비옷으로 디멘터 놀이를 하는 성인 둘

그렇게 묵게 된 오늘의 숙소는 크리스틴 아주머니와 길 아저씨의 집이었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빗속에서 겨우겨우 집을 찾았다. 마침 세바스찬도 같은 숙소를 소개받아 집 앞에서 만나 함께 문을 두드렸다. 진흙을 엄청 묻힌 비닐바지와 잔뜩 젖은 우비를 쓴 생쥐 3마리가 문을 두드렸을 때, 2002년 월드컵의 한국팀 감독 히딩크를 닮은 길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내 생각만이 아니라 길 아저씨도 닮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으셨다고 했다.) 집을 더럽힐까 겁이 났는데, 다행히 현관에는 우산과 신발, 정원용품 등을 걸어 놓는 작은 방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의 더러운 허물을 벗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언덕 위의 집인지라 2층은 다시 또 다른 1층이 되었다. 정원과 커다란 창이 있었고 노란색 색감의 벽지들이 따사로운 느낌을 주었다. 세바스찬과 우리에게 꼭대기 층을 쓰도록 주셨는데, 안쪽에 아들이 썼다는 화장실이 딸린 침실을 우리가 쓰고 세바스찬은 소파가 있는 작은 거실 같은 공간을 받았다. 지금까지 묵었던 모든 집들이 예뻤지만, 오늘의 집은 딱 내 취향이었다. 혼자 산다는 걸 상상하며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인테리어로, 간접 조명과 아담한 침대, 인디언 풍의 커튼으로 구분된 공간들과 작은 소품들까지. 애까지 둘이나 생긴 지금, 결국 내 인생에 자취경험은 전무후무하겠지만 이렇게라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거실은 미끄럼틀과 뽀로로와 바닥 매트에게 이미 점령되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며 전채요리로 먹으라고 크래커와 치즈, 맥주를 주셨다. 예쁘게 접힌 냅킨과 전채요리부터 시작된 코스요리, 프랑스답게 당연한 듯 곁들여진 와인은 오늘 처음 만난,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낯선 방문객들이 아니라 소중한 손님에게 대접되는 그것이었다. 게다가 저녁식사의 메인 요리는 자그마치 프랑스에서도 고급 요리로 분류되는 송아지 고기였다. 부활절에 많이 만들어서 남은 요리인데 괜찮냐고 물어보셨지만, 순례길에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다. 

 길 아저씨가 히딩크를 닮았다면, 크리스틴 아주머니는 클래식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주인공 마리아, 줄리 앤드류스 같은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장난기가 많은 이미지였고, 아주머니는 차분하면서 선생님 같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실제 성격도 첫인상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저씨는 냄새가 정말 많이 나는 치즈가 있는데, 아주머니는 싫어해서 아예 바깥에 두는데 혹시 먹어보고 싶냐고 물어보시고는 몰래 히히히하며 문제의 치즈를 가져오셨다. 아주머니가 들어왔을 때, 우리에게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대시면서 치즈를 살짝 숨기셨고, 아주머니는 냄새를 맡고 발견하자마자 우아하게 “오 노~”라고 부채질을 하셨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분의 관계와 결혼생활이 눈에 그려졌다. 

문제의 치즈

 순례길에서 만난 부부들을 포함하여 각자의 부모님들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부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존과 마리처럼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부부가 될까, 길과 크리스틴처럼 서로 놀리고 장난치며 웃음이 가득한 부부가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편안한 부부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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