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프롤로그

by 리나

나에게 ‘꿈’이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어릴 적부터 특별히 하고 싶은 직업이 없었고 나는 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꿈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적어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매년 없는 꿈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꿈이 없던 나는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부모님 말씀대로 일단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성적에 맞춰 진로에 상관없이 전공을 선택했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리고 졸업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꿈은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학교 상담센터에서 진로상담도 받아보고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진로상담과 진로컨설팅 업체에서 유료 상담도 받아봤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스스로가 점점 더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었고 토익, 교환학생, 동아리 활동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은 좋은 편이었지만 꿈이 없었던 나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도저히 몰랐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졸업을 했다.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방황이 이어졌다. 친구들도 피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으면서 백수로 지내던 시기였다. 매일같이 울면서 해가 뜨고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우울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새벽이었다. 당시 한창 빠져있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낙원’이라는 곡의 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 거
아니면 그냥 먹고사는 거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이 많은 거
...
We deserve a life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늘 ‘꿈’이라는 것을 직업과 동일시해왔다. '나는 꿈이 변호사야', '내 꿈은 아이돌이 되는 거야'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사처럼 꿈이 꼭 ‘직업’ 일 필요가 있을까?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 내가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 역시 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미래의 나를 상상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막막하고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직업이 아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다 보니 점점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처음으로 내 미래가 기대되었다.


내가 꿈꾸는 일상은 이러했다.


남들이 인정하는 괜찮은 기업에 들어가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하는 것. 퇴근 후에는 내가 리스트업해 둔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간다. 남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과 운동을 꾸준히 하고, 연고전은 꼭 가야겠지.

_다이어리에 적어 놓았던 실제 내용


직업으로 정의되지 않는 나만의 ‘이름이 조금 다른 꿈’이 생긴 것이다.




이후 김수영 작가님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책을 읽으며 내 꿈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김수영 작가님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때 자퇴까지 했지만 이후 독학으로 연세대를 입학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세계적인 기업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했지만 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 목록을 작성했다. 그렇게 퇴사 후 90개국에서 72개의 꿈을 이루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꿈은 꼭 직업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이 곧 꿈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래서 김수영 작가님처럼 나만의 ‘꿈리스트 100가지’를 만들었다.


일본 가서 초밥 먹기, 동남아 가서 발 마사지받기, 올림픽 직관하기, 해외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보기 등 여행에 관련된 것부터 바디프로필 찍기, 러닝대회 참가하기, 전시회 도장 깨기, 음악페스티벌 도장 깨기, 책 출판하기, 기부하기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오직 나의 마음이 말하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렇다. 나는 현재 내가 꿈꾸던 일상을 매일 살고 있다.


우선 내가 원하던 회사에 취업했다. 안정적이고 워라밸 좋은 회사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아,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꿈이 생기자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를 얻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꾸준히 운동하겠다던 다짐대로, 평소 주 3~4회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2년 정도 크로스핏을 했고, 그 후에는 헬스, 요가, 클라이밍, 러닝크루, 서핑, 폴댄스 등 하고 싶었던 운동을 다 해봤다.


나의 메인 취미 생활은 전시, 공연 관람 등 문화생활이다. 미술관이 많은 광화문에서 근무하고 있어 퇴근 후, 주말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틈틈이 전시를 관람하고는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본 전시회만 200개에 달한다.


주말과 연차를 활용해 여행도 많이 다녔다. 작년 한 해 동안 해외여행 4번, 국내 여행 11번을 다녀왔으며, 그 과정에서 꿈리스트에 있던 동남아에서 발 마사지받기, 올림픽 직관하기, 해외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보기 등을 이루었다. 이 외에도 바디프로필 찍기, 기부하기 등 많은 꿈을 이루었다.




누군가는 ‘이런 걸 꿈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꿈이다. 꿈에 대한 정의를 바꾸니 ‘나는 꿈이 없다’는 결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진짜 나의 꿈을 찾을 수 있었다.


한때는 ‘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였지만, 지금은 이루고 싶은 꿈이 너무 많아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꿈 부자’가 되었다.


이 책(브런치북)은 나의 '이름이 조금 다른 꿈'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