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를 유지할지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할지에 대한 말이 많았지만 회사는 올해도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했다. 재택근무로 사무실에 사람이 적어지면서 그 열기는 덜했지만 입사 첫 달만큼은 신입사원에 대한 관심사가 뜨거웠다. 신입사원이 몇 명 뽑혔고 남녀 성비가 어떻고, 가장 나이가 적은 신입과 많은 신입은 누군지 등에 대한 질문이 돌고도는 시즌이었다.
"이번 신입 분들 중에 중고 신입 비율이 70%가 넘는대요."
이제는 신입사원 공채에서 경력 입사자가 과반수를 차지한다. 신입을 뽑는다면서 경력을 요구하는 취업시장,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취업준비생의 비명을 실제 데이터로 확인한 것이다.
그때 질문 하나가 훅 들어왔다. "그런데 중고라는 표현이 사람한테 쓰기에는 좀 부적절한 것 같지 않아요? 경력 있는 신입이라든지 다른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뭐가 있을까요?"
무언가에 맞은 느낌이었다.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단어의 뉘앙스를 곱씹게 되는 계기였다. 흔히들 말하듯 말에는 힘이 있다. 무형의 말은 쓰면 쓸수록 실체가 생기고 내재화된다. 말에는 우리의 무의식이 들어있고 또 그 말이 우리의 생각을 프레이밍해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중고 신입이란 말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를 담아낸다. 직장생활 경험이 있음에도 다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지원자를 "중고 신입"이라고 하는데 중고란 흔히 사물과 결합해 쓰인다. 중고 가구, 중고 피아노, 중고 가방 등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된, 좀 오래된 낡은 물건을 의미한다.
즉, 중고 신입이란 말에는 '사람의 사물화' 세태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직장을구하기위해필요한학력, 학점, 토익점수따위를합하여이르는말인 "스펙"과 결을 같이 한다. 스펙도 흔히 자동차와 컴퓨터 사양을 가리킬 때 쓰는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기기나 시스템의 성능 제반을 의미하는 말인데 어느새 우리의 경험과 노력치를 표현하고 있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스펙 쌓기, 스펙 업, 합격 스펙 등. 과도한 취업 경쟁에서 본인을 잘 팔기 위해 스스로 사물화 되고 도구화되는 시대의 모습이요 자화상인 것이다.
중고신입 증가는 시대의 결과물
잡코리아가 '22년 상반기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스펙을 조사한 결과 ‘인턴십’ 경험 보유자는 27.0%로 '20년 47.8%에 비해 크게 감소했고 ‘해외 어학연수’ 취업 스펙도 '20년 25.2%에서 13.5%로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활동’ 경험자 역시 41.1%로 작년 대비 3.0% 포인트 감소했다고 한다. 2년이 넘는 코로나 상황으로 취업시장에 막 발을 들인 신입들은 스펙 쌓을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팬데믹으로 취업 스펙 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설상가상 기업들의 채용 공고까지 줄어 실제로 올해 2월 4년제 대학 졸업생 중 22.7%만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채용시장 트렌드도 신입 공채보다는 직무 중심 수시채용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경력을 쌓을 길이 없는 신입 구직자에 견주어 경력을 보유한 중고신입(올드 루키)에 비교우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중고신입을 선호하는 입장은 쉽게 이해가 간다. 작년 사람인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중고신입에 대한 만족도가 경력이 없는 신입에 비해 14.3점이 높았다. 그리고 성인 남녀 2명 중 1명 이상이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지원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중고신입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모두 크다. 시대의 결과물로 중고신입의 풀이 커진 것이다.
재수생과 중고신입의 증가, 우연일까
경력 인정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MZ세대에 속한다는 리포트가 있다. 각자의 사유가 있겠지만 대개는 연봉 또는 워라밸이 현재보다 더 나은 회사, 비전이 높은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원하는 직무나 산업군으로 옮기기 위해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중 MZ세대에 해당하는 인원은 약 1,900만 명에 달하고, 기업 구성원 내 비중은 60%를 웃돈다. 이전 세대에 비해 높은 수준의 보상과 조직문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본인에게 맞는 직무와 성장에 대한 높은 욕구, 장기근속 의지나 애사심이 높지 않다는 MZ세대의 특성이 이직뿐 아니라 중고신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다.
한편, 교육통계서비스(KESS)에 따르면 2021학년도 전국 대학 입학자 중 재수생 비율이 25.7%로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편입 지원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인 서울 대학 신입생 중 35%가 재수생이며, 코로나를 기점으로 25세 이상 대학 신규 입학자도 크게 증가했다.(19학년도 4,137명에서 21학년도 9,391명으로 증가)
재수생(수능 2,3회 이상 응시자도 포함)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중고신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대상자가 모두 MZ세대이기에 맞닿은 지점이 있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기존 대학보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재수를 결심한 경우,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에서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문직을 갖기 위해 재수를 하는 경우, 회사에 재직하다 일에 염증을 느껴 다른 분야로 도전하기 위해 재수를 하는 경우 등.
어쩌면 MZ세대의 행동 기저에는 취업난과 저서장 경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에 의해 내재화된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국가가 나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높은 수준의 보상 추구처럼 말이다.
2년이 넘는 팬데믹 상황으로 대다수가 경제난을 겪고 취업난을 경험했다. 경력 없이는 신입으로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산업군과 직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취업난이라는 사회 문제에서 나를 잘 팔기 위해 스스로를 정량화하고 도구화하는 스펙 인간이 되어간다. 재수생과 중고신입이라는 우리 시대의 단어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진다.
*흔히 쓰이는 "근로자"라는 단어가 사용자 관점 용어이듯, 현재 사회에 유통되는 단어들은 파워 있는 쪽의 관점에서 정의된 것들이 많다. 중고(used) 신입이 자본주의/사용자 관점에서 사람을 수단화하는 뉘앙스가 강한데, 인본주의/노동자 관점에서 경험을 존중하는 뉘앙스로 경력(experienced)신입이란 단어를 유통시키는 것은 어떨까(물론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긴 해도 이 사회가 모순덩어리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