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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9. 2021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백신 2차 접종이 나에게 준 선물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 일이 있었는데 돈을 아끼려고 용쓰는 동안 시간으로 손해 보는 게 더 많아져서 결국은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 어제 씁쓸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알람도 끄고는 실컷 잠을 잤는데 다행히도 백신 예약 시간에는 맞춰 일어나서 문제없이 2차 접종을 완료하였다.


1차와 마찬가지로 팔뚝 위쪽에 주사를 맞는 거라 반팔을 입고 그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는 얇은 패딩으로 혹시나 모를 추위에 대비를 해 주었다. 그런데 패딩을 입은 내가 민망하게 아침부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가을 햇살이 거리 곳곳을 비추며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백신 1차 접종 후 내 몸의 반응은 쏟아지는 잠 그리고 마구 당기는 식욕이었다. 왼쪽 팔이 아파서 이틀 동안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하는 시간을 보내었는데 2차는 신체적인 반응이 더 심하다고 해서 백신을 맞고 돌아오면서 아침에 문을 연 동네 식당에 가서 콩비지찌개 하나를 든든하게 먹었다. 배도 별로 안 고픈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먹은 것이었다. 다 먹고 나니 배가 불러 산책을 하고 집에 가야겠다며 근처 대학교 캠퍼스를 걸었는데 살랑거리는 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들 그리고 빨간 단풍들과 납작한 주홍빛 나뭇잎들이 여린 내 마음을 마구 자극해왔다. 순간 나는 감성에 빠져들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낙엽이 깔린 길을 천천히 걸으며 금세 낭만주의자로 변신했다.  

가을의 색은 어쩜 이리도 고울까!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 바닥을 보며 걸으시다가 몸을 숙여서 무언가를 줍고 계셨다.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었다. 아주머니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저 앞에 걸어가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찍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몇 번을 멈추셔서 나뭇잎을 주우시면서 아주머니는 소녀시절의 자신을 떠 올리셨을까?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여고생들은 각자 주운 나뭇잎을 책장에 끼워두며 말렸다가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코팅을 해서 서로에게 선물을 주었더랬지. 책을 읽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뭇잎이 발견되면 마치 돈이라도 발견한 듯 설레고 기뻤는데. 엊그제 일처럼 떠오르는데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바닥을 보며 걸으시다가 예쁜 나뭇잎을 주우시는 소녀같은 분

금가루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한 아저씨가 열심히 바닥을 쓸고 계셨다. 하늘은 파랗고 그 파란 하늘 아래에 내가 좋아하는 빨강, 노랑, 초록들이 살랑살랑 빛을 내고 있었고 따스한 가을빛을 맞으며 걷는 그 순간 내 맘은 희열로 가득참을 느꼈다.


‘정말 아름답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제일 행복해!’


이제는 짧아져서 더 소중해버린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에 많은 이들이 자연의 행복을 찰나에라도 함께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오징어 게임 주인공인 오일남 할아버지가 방송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제가 우리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아름다움’이란 말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두 분을 만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에 벌써 내 눈가에 촉촉이 맺힌 이슬이 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참 많은데 일 때문에, 돈 때문에 혹은 다양한 많은 이유들로 아름다운 것들을 외면하고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느끼는 이 아름다운 가을이 더 가치 있게 다가왔겠지. 사람이 없는 곳을 걸을 때면 자연의 향기를 짧게나마 충분히 흡입해 보았다. 자연은 보는 것뿐만 아니라 향기 또한 아름다웠다.


백신 2차 접종 덕분에 아침부터 아름다운 날을 만끽해 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짧게 존재를 하지만 여운은 오래오래 우리 마음에 남아서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겠지.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맞이하고 싶었던 날이라는데 소중한 오늘을 헛되게 보내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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