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고 차분한, 수술 전날의 하루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병원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캐리어에 담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캐리어를 끌고 나왔지만,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입원 전까지는 점심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병원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남편은 뜨끈한 국밥을, 나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해 따뜻한 한 끼를 먹으며 “입원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 끝에 짐을 병원 지하 4층 보관함에 맡기고, 다시 ‘건강하길’ 산책로로 향했다.
한번 와봤다고, 우리에게는 어느새 익숙한 공간이 되었고, 낯설기만 한 병원 속에서 이 평화로운 작은 동산은 마치 조용히 우리를 품어주는 따뜻한 안식처처럼 반갑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자연의 싱그러운 냄새와 부드러운 바람, 잔잔히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불안과 걱정, 그리고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함께 뒤섞인 채로,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느끼기 어려울 지금만의 감정들을 서로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입원을 하는 동안은 이렇게 걷거나, 바깥공기를 마음껏 느끼는 일도 쉽지 않을 테니, 조금이라도 이 순간을 더 오래 붙잡고 싶었다.
시간이 되어 입원수속 후 병실로 안내받았다.
병실은 2인실이었고, 이미 입원해 수술을 마친 70대 어르신과 아내분이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어르신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술 후 주의할 점과 회복 과정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남편의 위암 병기를 묻는 질문에, 문득 ‘이제 병기로 설명되는 위암 환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묘하게 무겁고 어색해졌다.
남편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었고, 병원에서는 수술 전 준비사항을 세심하게 안내해 주었다. 특히 수술 후 폐 합병증을 막기 위해 호흡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리 연습해 둘 것을 권했다. 수술 후 깊게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꾸준히 호흡법을 익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먼저는 심호흡 연습부터 시작했다. 입을 다문 채 코로 천천히 3초간 숨을 들이마시고, 3초간 숨을 멈춘 뒤, 5초간 천천히 내쉬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호흡 훈련을 돕는 공 올리기 기구를 실제로 사용해 연습을 이어갔다. 수술날을 기다리는 동안 수없이 찾아본 위암 수술 관련 자료마다 등장하던 그 기구를 직접 마주하니 ‘아, 이거였구나’ 하는 반가움과 친근감에 미소 지었다. 기구를 눈높이에 맞게 세워 입으로 빨아들일 때 공이 3초 이상 떠 있도록 유지하는 연습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 숨도 차고 힘들어보였는데 역시나 성실한 남편은 간호사선생님 안내대로 열심히 따라 해 주었다.
다음은 기침을 유도하는 연습이었다. 양손을 배에 올리고 코로 숨을 들이마신 뒤 배에 힘을 주면서 숨을 참고, 배가 울릴 정도로 힘 있게 기침을 여러 번 나눠서 하는 방식이었다. 배가 울릴 정도로 기침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파악이 안 되어 계속해서 연습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흉부 타진 단계였는데, 이 과정은 보호자의 손길이 꼭 필요한 단계라 내 역할이 중요했다. 가래가 폐 깊숙이 붙지 않도록 손을 둥글게 오므려 남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 부위를 2분 정도 두드리고, 이 과정을 총 8~10분간 반복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세게 두드려야 해서 수술 후에 이렇게 두드린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간호사 선생님 설명대로 성실히 연습했다.
오후 5시에는 장 비우는 약도 복용했고 그날 저녁에는 수액과 함께 약물이 투여되었다. 해가 지고 하루가 저물면서 비로소 현실감이 밀려왔다. ‘정말 내일이면 수술이구나…’ 남편은 환자용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내일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작은 간이침대를 보며 “내가 아프면 키가 큰 당신은 이 침대가 맞지도 않을 테니 난 절대 아프면 안 되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오늘만큼은 깊은 잠을 자고, 건강한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