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책임’ 지는 ‘독립’적인 인격체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거의 매일 캠퍼스 안에서 지내다가 보면
특히 저학년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패션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이 많다.
한여름에 갑자기 털장화를 신고 온다던지
누가 봐도 불편한 차림으로 나타난다던지
나도 그 연령의 아이를 키워본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가 그러고 나간다고 하면 몇 번이고 말렸을 것 같다.
“정말로 그렇게 갈 거야?”
“진짜?”
“불편해 보이는데?” 등등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그런 아이를 보면 동료 부모나 선생님의 마음이 비슷하다.
‘스스로의 선택에 스스로가 책임지겠지’
선택과 책임에 대해 정말 사소한 것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이 전에는 한여름에 털옷을 입고 가는 아이를 보면 속으로
‘저 부모는 아이를 컨트롤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이의 선택이고 아이가 덥다 하고 징징대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태도이므로 혼나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참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자란다.
혹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아주 강하다.
라고 생각되던 이곳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No”라고 한다면 책임지는 것
그러헥 스스로를 책임지고 독립성을 키워가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신발 끈 묶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학교에 있다 보면 그렇게 신발 끈 좀 묶어달라고 발을 내미는 애들이 많다.
조금만 시간을 주고 기다리면 스스로 묶는데 그걸 빨리 급하다고
“야 됐어, 가만히 있어, 엄마가 할게” 했던 과거의 내가 아이들의 독립성을 갉아먹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다.
컵스카우트, 보이/걸스카우트 활동을 보면
끈 매듭짓는 법, 텐트 치는 법 등 아주 기본적인 야생에서 살아남는 기술들을 가르친다.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저걸 다 배워야 해? 그냥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 싶으면 다 됐고,
아주 독립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그 해 여름 방학 해외 여행지를 내가 직접 선택하고,
물론 왜 그곳으로 선택했는지, 가서 무엇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은 지 PPT를 만들어 두어 번의 발표를 해야 했으며,
숙소 예약부터 루트도 내가 짜야했다.
물론 렌터카 운전은 아빠가 하셨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내 몫이었다.
(물론 연년생 오빠가 있었지만, 성격 상 거의 내가 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의 이런 독립성이 그냥 길러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 또한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은데,
모든 걸 다 해시는 가정에서 자란 배우자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어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주 많은 조율과 갈등이 있었고,
다행인 지 불행인 지 이곳 미국에서는 너무나 바쁜 아빠 덕(?)에 내가 온전히 케어하고 있기에 아이들의 독립심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매일 결정하는 수많은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인 지 고민하고
그 후 그 ‘결정’에 스스로 ’ 책임‘질 수 있는
그런 독립적인 인격체로 이 두 아이가 자라나길.
그 항로가 비록 힘들지라도, 아니, 분명 힘들겠지만
묵묵히 이겨내는 힘이 있는
그렇게 키우는 게 내 인생 최대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