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4일 차
"나 아직 숙제 하나도 못했네..."
2호의 담임선생님이 내주신 개성뿜뿜 숙제를 처음 봤을 때, 이거 진짜 재밌겠다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재미와는 별개로 숙제는 숙제였다.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미루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기분은, '개성뿜뿜'보다는 '숙제'라는 단어의 무게가 더 크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했다. 마치 달콤한 케이크 위에 얹어진 무거운 돌멩이처럼.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동네 한 바퀴 뛰기, 가족과 노래방 가서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기, 탐구 보고서 쓰기, 가족을 위한 나만의 요리하기, 부모님의 직장 방문해서 하루 동안 청소와 심부름 등 봉사하기 등등. 숙제 목록에는 재미난 것들이 한가득이었지만, 갑자기 하기엔 너무 벅찼다. 배부른 상태에서 뷔페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그런데 목록 중에서 눈에 띄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부모님과 찜질방 가기!> 이거다 싶었다. 마침 오늘 남편이 쉬는 날이라 아빠의 등도 밀어드릴 겸 찜질방에 다녀오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핸드폰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남편을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건 누가 뭐래도 숙제니까. 얼른 해치워 버리는 게 속 시원할 테니, 불만 가득한 남편 앞에서 눈치 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느라 애썼다. 마치 고양이 앞에서 생선을 감추는 기분이었다.
"알았어. 1시간만 갔다 올 거야."
"그래. 조금만 있다 와. 1호도 힘들어하니까."
말은 그렇게 해줬다. 위로와 걱정이 담긴 표정도 보너스로 넣어서 손까지 흔들며 배웅을 했다. 나는 안다. 우리 아들들은 찜질방에서 1시간, 욕탕에서 1시간이 기본이라는 것을. 아무리 가자고 애걸복걸해도 아빠가 공공장소에서 소리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아이들은 아빠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마치 아이들과 남편 사이에 불가침 조약이라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냈다. 가는 길에 김밥을 싸가려는데 가게가 휴무라 허탕을 치고, 2호를 픽업하려는데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보냈다.
그리고 외쳐본다.
나 이제 자유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가끔은 일상의 작은 숙제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그 속에서 찾아내는 작은 행복들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마치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말이다. 숙제와 자유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우리에게 일상의 소소한 가치들을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