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이 Aug 16. 2024

학습만화와의 줄다리기

방학 19일 차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학습만화라는, 누군가에겐 유익하고 재밌는 그 책들이 이제 나에게는 작은 고민거리가 되었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은 자꾸 미루고, 틈만 나면 만화책에 빠져버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결국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손수 사다 준 학습만화들을 전부 창고로 넣어버린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잠시 멍해지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다. 이유를 물을 법도 했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이미 눈치챘는지 아무 말 없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 이 모든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이에게 읽으라고 사준 책을 내가 직접 치우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결단이 단순한 화풀이였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학습만화 속 지식에만 매몰되어 할 일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점점 힘들어졌다. "조금만 더 읽으면 안 돼?"라고 부탁하는 아이의 눈빛 속에서, 공부와 독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책을 읽는 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책이 만화일 때, 그리고 그것이 아이의 일상을 잠식해버릴 때, 부모로서 개입해야 할 시점이 오고야 만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학습만화를 금지하는 게 답은 아니다. 나는 알고 있다. 아이가 학습만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 분명히 있고, 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 결정은 단지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너무 달콤한 간식만 먹다 보면, 건강한 식사도 거부하게 되는 것처럼, 학습만화라는 달콤한 책에서 잠시 떨어져 줄글로 이루어진 책도 경험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도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고심 끝에 줄글로 가득 찬 책을 집어 들었다. 보란 듯이 읽기 시작했지만, 마음속에는 찜찜함이 가득했다. 이 방법이 과연 옳을까? 어쩌면 아이가 스스로 학습만화와 다른 책들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로서 가끔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 보기로 했다.


앞으로 나는 이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풀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습만화를 전부 금지하는 것이 아닌, 적절한 시간을 정해두고 균형을 맞춰가도록 돕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아이가 학습만화에서 얻는 즐거움과 그로 인한 지식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이 전쟁은 사실 전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해가는 긴 줄다리기 같은 과정일 것이다. 언젠가는 그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 때가 올 것이다. 지금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 학습만화들은 여전히 창고에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빛을 보며 다른 책들과 나란히 아이의 책장에서 자리할 날이 올 것이다.

이전 28화 시험 취소 대소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