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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ug 14. 2024

시험 취소 대소동

방학 18일 차


오늘도 둘째가 책상 앞에 앉아 '모르는 문제'와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니, 씨름이라기보다는 슬슬 피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제집을 펼치기는 했는데, 입에서 나오는 건 한숨과 "이거 몰라!"라는 말뿐이다. 결국 저녁이 다가오면서 내 속도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시험 포기하자! 뭐 하러 응시했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순간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안 돼! 시험 보면 선물 준다며!"라고 대답한다. 아니, 시험을 본다고 했지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는 말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선물에 눈이 멀어 시험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문제는 공부하는 모습이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말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도 한계에 도달했다.


"넌 시험 볼 자격이 없어!"


 그러고는 냉큼 컴퓨터를 켜고, 시험 신청 사이트에 접속한다. "좋아, 이제 시험을 취소하면 되겠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취소 버튼을 누르는데... 어라? 수수료 50%? 첫째랑 내 시험도 함께 취소된다고?

순간 머리가 띵해진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둘째의 시험을 취소하려다가 첫째와 내 시험까지 취소되어 버리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게다가 수수료가 50%라니! 차라리 시험에 참가하지 않고 응시료 100%를 날리는 게 낫다고? 아니, 그게 더 말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든 둘째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이래서 아이들 시험을 도맡아 신경 쓰는 부모가 되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싶다. 그래서 결국 취소는 하지 않고, 그냥 시험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 시험을 포기해 본 경험이 이 둘째에게는 나중에 더 큰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안고 말이다.

시험 당일, 내게 남은 건 그저 '포기하면 더 큰 손해다'라는 깨달음뿐이다. 그래, 인생은 늘 이렇게 웃프고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그나저나 이 아이의 시험 결과가 궁금해진다. 아, 혹시 이것도 무언가 큰 교훈을 주는 시험의 일부일까?

그래도 앞으로는 시험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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