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20일차
학원에서 돌아온 1호는 오늘도 울상이다. 매주 보는 테스트에서 점수가 낮게 나와 속상함을 애꿎은 선생님에게 화살을 돌린다. 친구만 예뻐한다는 둥, 자기만 숙제가 많다는 둥 불만을 한가득 쏟아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럼 학원 옮길까? 집에서 그냥 할래?"
"아니. 그건 안돼. 원장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준단 말이야. 지난 수업에는 핫도그를 사주셨는데 겉에 설탕이 진짜 꿀맛이었어."
핫도그 얘기에 기분이 좋아져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모습에 당혹스러움은 늘 나의 몫이다.
"엄마,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
간밤에 꿈을 꿨는지 아침부터 초능력 얘기에 혼자 신이 난 1호의 모습이 이젠 익숙하다.
"그래? 엄마는 1호가 안 날았으면 좋겠어. 그러다가 아예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해."
"..."
갑자기 적막이 흐른다. 훌쩍.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1호를 쳐다보니 어느새 얼굴이 벌게져 있다. 투두둑. 토끼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아이고야.. 내가 또 괜한 소리를 했다. 날아간다는 이별을 뜻하는 거였음을 이제야 자각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 극단적이 아닌가 싶어 달래지 않고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아침을 먹었다. 그러자 1호도 얼른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마저 밥을 먹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1분은 되었을까?
"쑤우~!"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양팔을 내리며 소리를 낸다.
"엄마 봤어? 네모! 이건 손흥민 그리고 이건 호날두 어떤 세리머니가 제일 멋진 거 같아?"
"너 조울증이야?"
"그게 뭔데?"
"기분이 금방 좋았다, 금방 나빠졌다..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아닌 데에~? 나는 계속 기분이 좋은 건 데에~?"
그냥 울게 해 버릴까? 저렇게 기분이 좋아서 까불거릴 땐 조용히 울고 있는 게 나은 것 같고, 별거 아닌 일에 눈물 지을 땐 그냥 맥락 없는 이야기로 혼자 히히덕거리며 웃는 게 좋은 것 같다. 아이의 롤러코스터 기분 따라 내 감정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래도 반항하지 않고, 말다툼 없이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하는 게 어디냐 싶다. 사춘기 그 녀석이 오기는 오나 본데 남들과는 다른 개체가 오나 보다. 사춘기도 돌연변이가 있나?
아마도 아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기쁨과 슬픔을 극단적으로 오가며 감정의 폭을 넓히고 있는 1호. 이런 모습을 보며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솔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통해 1호는 더 강해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같이 성장하는 것임을 느낄 것이고. 이 독특한 사춘기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은 나에게도 큰 배움이 될 거라 믿어본다.
까짓 거.
와라, 사춘기.
정면대결을 신청한다.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에게 너를 만들도록 허락하지 마라.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사진 출처 : 영화 <인사이드아웃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