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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Sep 02. 2024

천천히 가도 괜찮아.

따뜻한 보이차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민족은 ‘빨리빨리’ 문화가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아이들조차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2학기만 되면 엄마들의 마음은 이미 다음 해에 가있다. 

"너 이제 곧 0학년이야."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부모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감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집 첫째가 예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교육 체계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불안감이 개학과 동시에,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 집을 집어삼켰다.

"쟤 이제 중학생인데 큰일이야." 

이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나와 남편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첫째가 되묻는다. 

"중학생이 되는 게 뭐?"

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나는 매번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 오전에 진행된 라이브 강의의 주제도 ‘2학기 공부 계획 세우기’였는데, 질문들이 거의 모두 예비 초등학생, 예비 중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쏟아졌다. "이번 학기에는 어떤 과목을 중점적으로 공부해야 할까요?" "00 시험을 봐야 할까요?" "대형 학원에 보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이 줄을 이었다.

요즘 시기인 만큼, 어디를 가나 학부모들의 걱정은 모두 내년으로 향해 있다. 심지어 내 옆 테이블에서 손뜨개질을 하는 소모임의 바쁜 손 사이에서도, 대화 주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 0학년이 되면 정말 힘들어질 텐데…"

"맞아, 이번 학기에 잘 준비해야지."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가는 걸 보면, 마치 우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것 같다. 다음 단계에 대한 준비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현재를 누릴 여유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아이들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오늘이 내일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하루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그 미래가 오늘을 삼켜버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제는 멈춰서 생각해볼 때다.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그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빨리빨리"라는 문화적 강박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천천히 걸어갈 수 있도록 그 길을 함께 걸어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의 현재를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번에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게 뭐?"라고 묻는다면 

"중학생이 된다는 건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거야. 그런데 그 모험은 네가 스스로 발견해야 할 거란다. 내가 할 일은 그 모험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거야."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도 우리도 조금 더 여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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