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우리는 왜 더 좋아졌는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

by LINEA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씩 더 좋아졌다.
좋음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가 버텨낸 시간의 합이었다..


상실: 우리가 슬픔을 버티는 법


아이가 1년 반쯤 자라니,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자녀계획에 대해서도 둘이 좋을지, 이대로 만족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남편은 “하나도 충분하지 않아?”라 했지만,

나는 "그래도 둘이 낫지" 밀어붙였다.
“출산은 여자 의견이 더 중요하니, 원하면 그렇게 해” 했고,
생각보다 일찍 두 번째 아이가 찾아왔다.

첫 임신 때와 달리 급하지 않았다.
한번 해봤다고, 어떻게 대응하면 될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미루다 병원에 간 게 10주쯤이었다.

“유산입니다. 심장이 뛰지 않아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네 탓 아냐.” 짧은 말이었지만, 마음의 위로가 됐다.

수술이 끝난 뒤, 특별히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씩 처리하다 보니, 조금씩 현실이 돌아왔다.


이것이 곧 우리가 슬픔을 버티는 법이었다.
감정을 관리하고, 실행하면서, 구조가 무너질 틈을 줄이는 것.

그리고 며칠 후, 자연스럽게 같은 말을 했다.
“우리, 하나만 키우자.”

우리 세대에 둘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나도 막연히 ‘둘이 낫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진짜 맞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남편은 사실 처음부터 큰 욕심이 없었다.
“출산율 0.7 시대에 한 명이면 됐지 뭐.”
그의 태도는 담담했지만, 현실적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을지 다시 계산했다.
아이와의 관계만큼 부부의 관계도 중요했고,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모든 걸 감당하려 하기보다, 지킬 수 있는 선을 정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결론에 닿았다.


그래서 ‘하나만 키우자’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우리 시스템의 최적치를 다시 설정한 결정이었다.
감정의 무게가 아니라, 감당의 구조로 내린 합의였다.


수용: 납득의 언어


상실의 시기를 지나며 조금씩, 우리의 자리를 찾았다.

서로에 대한 기대를 낮춘 것이 아니라,
서로를 효율적으로 존중하는 최적의 거리를 만든 덕분이었다.


나는 아침잠이 많다. 주중엔 어떻게든 일어나지만, 주말만큼은 좀 더 자고 싶었다.
처음엔 협상처럼 시작됐다.
“주말엔 9시까지만 자면 안 될까?”
“8시까진 안 될까?”
“… 아니, 9시.”


짧은 실랑이가 반복되자 나는 결국 한소리 했다.
“내가 비싼 선물을 달랬나, 깜짝 이벤트를 해달랬나. 주말에 잠 좀 자자는 거잖아.”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 알았어.”


그 이후로 남편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면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8시든 9시든, 심지어 10시든. 그가 나를 깨우는 일은 없었다.


“아, 결국 논리적으로 납득이 된 거구나.”
그가 감정적으로 공감한 건 아닐 거다.
다만, 내가 잠을 자야 전체 효율이 올라간다는 계산에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대화로 확인하고 수용으로 이어간다.

반복: 다시를 계속하는 구조


결혼은 '처음'보다 '다시'가 더 많다.
다시 다투고, 다시 기대하고, 다시 조율한다.


‘다시’는 감정을 되풀이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갱신해 나가는 일이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고, 감정 표현이 서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편을 예전보다 더 많이 이해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매번 다짐하고, 또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이 과정들이
우리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싶어졌다.


확신: 구조가 감정을 키운다


분명 우리 결혼의 첫 설계 조건은 감정이 아니었다.


구조로 시작하고 유지되던 결혼이,

이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어간다.

“이 사람, 꽤 괜찮네.”
“이 사람, 없어선 안 되겠네.”


불꽃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이 아니라,

반복된 신뢰 위에 얹힌 잔잔한 확신이었다.


결혼은 구조로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안정된 구조는 감정을 더 오래 살게 한다.


인정: 다음 생에도


“남편, 다음 생에도 나랑 결혼할 거야?”
“응.”
“왜?”
“… 그냥.”


나는 웃었다.
짧은 대답 안에 우리의 지난 시간이 들어 있었다.

이 대화가 우리 관계를 정확히 보여준다.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계속 함께 가려는 의지.


우리도 가끔씩 트러블이 생기고,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구조를 점검한다.

규칙을 바꾸고, 루틴을 조정하고, 관계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그리고 정리 후 마지막에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keyword
이전 13화12. (주)가정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