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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는 건축

공간의 본질과 사람의 흔적

힐튼서울의 마지막 장면에서

by 이민정

건축 글만으로는 당장 먹고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뒤로 몇 해가 지났다. 그런 자각을 ‘철든다’고 표현한다면, 나는 아주 늦게 철이 든 셈이다.

그래서 건축을 잊었나―

9월 초, 서울 중구 가온도서관에서 2주 건축사 특강을 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집을 지을 능력도, 도면을 그릴 능력도 없는 건축역사이론비평 전공자로서, 어쩌면 무능한 건축쟁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건축을 사랑한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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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 어딘가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 머릿속이 가벼워지며 설렌다. 그 설렘은 부드럽고 다정하고, 적당히 포근하다. 다만 그 느낌을 내 작은 세상에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한때는 대개 문자로 건축을 생각하는 데 사로잡혀 있었으나, 이제는 몸과 감각으로 건축을 느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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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사라지는 서울 힐튼호텔을 기념하는 전시를 보았다. 동행한 그이는 몇 년 전 그곳에서 비싼 망고빙수를 먹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늘 그 주변을 지날 때 건물이 마치 병풍처럼 도심을 둘러싼다고 느꼈지만, 특별한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공간을 전시로 본다는 것은 묘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과 온기, 색채가 뒤섞였던 장소를, 몇 개의 오브제와 영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기억의 덩어리를 몇 점의 설치작품으로 되살린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전시는 결국 전시 공간 그 자체로, 그곳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또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방문객이 떠올리는 생각 또한 각자의 내면에서만 완성된다. 그렇게 ‘거기’는 다시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짐의 그 공백 속에서 나는 이상하고 묘한 감각을 느꼈다. 도시의 소음과 빛 사이에서 여전히 미세하게 남아 있는 숨결, 그것을 붙잡는 일. 서울 힐튼호텔의 마지막 전시를 보며, 나는 그 숨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이곳은 오랫동안 결혼식, 축하연, 비즈니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던 장소였다. 전시에는 건축을 이루던 재료를 활용한 설치작품, 기록물, 건물의 일부가 나열되어 있었다. 벽은 여전히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고, 영상 속 복도와 카펫은 수많은 발자국의 리듬을 품은 채 조용히 침묵했다. 내게 이 사라짐의 과정은 단순한 해체가 아닌, '생활공간(lived space)'의 소멸로 느껴졌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세 가지로 나눈다. 설계자와 자본이 만들어낸 '기획된 공간(conceived space)', 눈앞의 물리적 형태로서 '지각된 공간(perceived space)', 그리고 이용자가 살아내며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체화된 '생활공간(lived space)'. 어느 공간에서나 이 세 차원은 서로 긴장하며 교차한다. 서울 힐튼호텔 또한 그 예외가 아니었다. 전시는 건축가 김종성의 기획 의도와 설계와 건축 당대의 도시 계획,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안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경험을 보여주었다. 한때는 관계자 일부만이 주목하던 영역이지만, 사라짐의 순간이 오면 비로소 그 내막이 드러난다.

이제 이곳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건물이 세워지기 전과 같이 다시 추상화된 도면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사람들의 기억은 구조 속에서 삭제되고, 장소는 다시 하나의 ‘데이터’로 환원된다. 그 속에서 사람의 기억은 자리를 잃는다. 사람들은 '전시'를 걸으며 과거의 소리와 냄새를 되살리고, 머물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러한 순간들은 건축의 추상화를 거슬러 올라가, 기억의 형태로 공간을 되살리는 저항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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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부서진 돌덩어리와 가루, 건축 폐기물로 변한 건물의 일부가 영상 속에서 흩날린다. 나는 어느새 호텔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커다란 샹들리에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유리 너머로 도심의 불빛이 번졌다. 이 모든 장면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찰나의 공기가 나를 붙잡았다.

콘크리트와 철근의 구조 위에 중후한 대리석과 금빛 손잡이로 마감된 공간.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배경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진 그 모든 것이 건축의 진짜 얼굴을 이룬다. 물리적 잔존이 아니라, 감정적 잔향으로서 건축의 진짜 얼굴 말이다.

값비싸게 꾸며진 공간이라도, 결국 그곳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 앞에서 나는 함께 일상을 나누는 그와의 ‘집’을 떠올렸다.
건축공간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언제나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어떤 세련된 의도와 값비싼 마감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생활공간'의 본질일 것이다. 공간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지만, 결국 사람의 삶과 기억 속에서 다시 지어진다.

너와 나의 삶 속에서 매일 지어지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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