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눈을 떴다. 눈가와 이마 쪽이 묵직하게 쑤셨다. ‘오늘은 흐리구나.’ 창문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기 중 눅눅함이 천천히 머리로 스며드는 듯했다. 십 대 때부터 이런 날에는 늘 머리가 아팠다. 그땐 이유를 몰랐다. 단순히 우울한 날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저기압 때문이라는 걸 안다. 진통제를 삼키고 30분쯤 기다리면 통증은 사라진다. 그 사이 생각의 속도도 느려진다. 몸의 리듬이 바깥세상의 리듬과 엇갈리는 시간이다.
늦은 오후, 당산역 양화대교 쪽 미팅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창밖으로 강이 스쳤다. 지하철의 진동, 흐린 하늘, 그리고 한강의 묵직한 수면이 묘하게 어울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이 짧은 구간에서 도시의 시간은 늘 조금 느리게 흐른다. 강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도시의 결을 가로지르는 일이다.
양화대교는 한강 다리 중에서도 독특하다. 서울의 서쪽 끝, 도시의 숨이 잠시 느려지는 지점에 놓여 있다. 처음 세워진 건 1965년, 이름은 ‘제2한강교’. 그 시절의 다리는 도시의 혈관이었다.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세워졌고, 강은 그저 건너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도시는 늘 스스로의 구조를 재구성한다. 기능의 시대가 지나고, 다리는 더 이상 ‘넘어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시선’이 되었다.
양화대교는 도시의 시간층을 품고 있다. 산업화의 첫 세대가 남긴 콘크리트 살집, 1980년대의 확장된 차선, 2000년대의 구조 보강... 이 다리는 매번 시대의 요구에 따라 형태를 바꾸어온 도시의 초상이다. 건축적으로 보자면 양화대교는 하나의 ‘도시적 장치(urban apparatus)’다. 강의 폭만큼 넓은 간극을 매일 연결하며, 서울의 중심과 변두리를, 도시의 속도와 강물이라는 자연의 흐름을 동시에 잇는다. 한강의 다리들은 언제나 도시의 변화를 먼저 받아낸다. 그들은 교통시설인 동시에, 서울이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험하는 구조물들이었다. 그래서 교각을 바라보는 일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자기 몸을 확장하며 시대마다 새로이 균형을 찾아온 궤적을 읽는 일과도 같다.
다리 위로 수많은 시간과 인상들이 겹쳐 흐른다. 출근길의 무표정, 퇴근길의 피로, 밤마다 강을 건너는 불빛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은 구조체의 묵묵한 존재감. 도시는 다리 위에서 매일 자신의 리듬을 갱신한다. 강물은 여전하다. 인간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물은 제 시간으로 흐른다. 양화대교의 기둥 아래로는 그 느림이 도시의 긴장감을 식히듯 흘러간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몸의 리듬이 다시 도시와 맞춰지는 걸 느낀다.
오늘처럼 하늘 가득 구름이 낮게 깔린 날, 강과 다리에 대해 하염없이 몽상하고 있노라면, 나로서는 다 알 수도, 다 헤아릴 수도 없는 도시의 기억이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듯하다. 도시는 언제나 물 위를 건너며 스스로를 세워왔고, 다리는 그 기억을 이어주는 건축적 기억의 손끝이다. 그 손끝이 멀리 가리키는 곳으로, 시간과 공간, 인간과 도시가 서로 스며드는 느린 경계를 따라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