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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Sep 23. 2018

명절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도  우리는 가족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가족에 차례상과 제사가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의 혼란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공유합니다.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시작

할머니는 슬하에 4형제를 두셨고 아버지는 둘째입니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삼 형제들은 우리 가족이 이 만큼 살 수 있었던  것은 양지바른 곳에 조상님을 모신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4 형제 슬하의 자식들도 제사와 차례는 가족을 묶어주는 좋은 명분이며 조상님의 공덕에 대한 감사하는 사람의 도리라고 믿었습니다.  


큰 어머니는 제사와 차례를 준비하는 역할을 도맡아 해 오셨습니다. 큰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사는 1년에 한 번으로 줄였고, 명절 차례는 일 년에 두 번 지냈습니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갔고,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 후 할머니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명절 전날 큰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린다는 명분으로 둘째인 아버지 집에 모여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몇 년 전 큰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조상님들에게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집안의 두 분이 돌아가시면서 큰 어머니의 오랜 결심이 실행하였습니다.  



큰어머니의 선언 :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

큰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제사와 차례를 올해부터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 화를 많이 내셨습니다.


큰 어머니의 주장은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본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제사나 차례음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 종손인 두 아들이 모두 타지에서 일할 뿐만 아니라 마흔 되도록 장가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앞으로 시집 올 며느리들에게 제사와 차례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지 오래되어 제사와 차례를 지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형제들과 논의한 후에 큰어머니로부터 조상님의 위패를 받아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였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의견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필자와 사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이 의견을 모으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선언 : 차례와 제사를 받지 않겠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큰 어머니와 다투기도 하고 상의도 하면서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남자들이 결정하면 따른다는 분위기로 몇 달간 지속되었다. 아버지의 완강한 주장에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은 어머니들과 며느리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마음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큰어머니가 차례와 제사를 넘겨주더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완강하였고 아버지가 차례를 지내려면 아버지가 직접 차례상을 차려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는 차례와 제사를 지낼 수 있지만 며느리들은 아니다
종갓집에 시집온 것도 아니지 않은 가


어머니께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두 명의 며느리의 생각을 대표해서 총대를 멨던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제사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조상님 제사는 넘겨줄 수 없다는 어머니의 논리는 일리가 있었고, 필자도 집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집안의 모든 며느리들의 문제였다.

큰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차례와 제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며느리들에게 까지 이어졌습니다. 종손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고, 큰 댁 종손들이 제사를 도로 가져가지 않는 한 우리 집에서 조상님 제사를 두 며느리가 도맡아야 합니다. 처음 며느리들은 소극적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아버지 앞에서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며느리들을 생각해 독하게 마음먹은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조상님들에게 감사하는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사와 차례는 당연한 것이고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때 큰 아버지와 형제들 간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사와 차례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큰댁으로 모여야 했고, 모인 후에는 서로 밥 한 끼 먹으면서 마음을 풀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란 필자는 제사와 차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례와 제사가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은 남자들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며느리들이 중심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며느리들은 시집와서 남편을 사람 만들기도 힘든데  조상님들 제사와 차례까지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 그리고 며느리들의 완강한 주장에 주춤했습니다. 공자님께서 제사를 말씀하실 때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음식 준비가 마음의 준비를 넘어선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의 도리와 조상님의 공덕도
차례와 제사 음식 준비의 문제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설날이 찾아왔다.  

집안의 모든 며느리이자  여자들의 완강한 반대에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결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와 이하 우리 가족들은 설날 이틀 전에 모였습니다. 아버지는 차례가 없는 명절 앞에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설 전날 우리가 먹을 것은 해야 하지 않냐며 어머니와 두 며느리는 전과 몇 가지 음식을 하였습니다.


늘 명절 전날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였기에 어머니는 아버지 형제분들과 가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큰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왕래가 없었습니다. 저녁에 보쌈으로 먹으면서 어머니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형제분들 모두 일이 있으셨는지 오지를 못하셨습니다.


설날 아침, 식사를 마친 가족은 눈이 엄청 내린 설날 성묘를 가자는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평상시 이 정도의 눈이라면 성묘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님께 차례도 못 드렸으니 세배는 성묘 후에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에 도착하여 한 20분 정도 눈을 치우면서 올라가 성묘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성묘하는 내내 마음을 합치지 못했습니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은 성묘를 마치고 내려와 세배도 없이 세뱃돈을 아이들에게 주어주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집으로 와 못다 한 세배를 하며 설날을 조용히 보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다

제사는 자연스럽게 없어졌고 명절날 차례상도 없어졌습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새로운 명절 문화에 적응해 갔습니다. 명절 전날 온 가족이 먹던 저녁은 이제 우리 가족들 위주로 함께 하지만, 언제나 작은 아버지 식구들과 큰 댁 식구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두 작은 아버지들은 일이 바쁘기도 하고 차례도 없으니 가끔 들립니다. 명절 당일에는 각자 집에서 출발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앞에서 만납니다.


제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필자는 아버지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유언하시면 필자는 아버지 제사를 어머니와 함께 지내겠으니 걱정 마시라 하였고, 제가 음식은 잘한다고 농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삐걱거리던 문제는 시간이라는 약에 의해 봉합되었습니다. 더 이상 제사와 차례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이후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삼 형제와 며느리, 손주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자주 모이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자주 모이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자주 만나 일상을 나누고 추억을 만드는 것이죠.




추석 명절 전날 아침 풍경

우리 가족은 제사와 차례에 대해 고민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차례와 제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음식 준비가 문제였습니다. 조상님의 공덕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사람의 도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동네 창피하다는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받아들였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아쉬움은 성묘로 대신하였습니다.


오늘 추석 전날 아침입니다. 어머니와 두 며느리는 우리가 같이 지내는 삼일 동안 먹을 음식과 집에 가져갈 여분의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제가 수고한 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형제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사기로 하였습니다. 커피의 그윽한 향을 맡으며 아침에 몸에 밴 기름기도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설거지를 합니다.


명절을 보내면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차례와 제사가 없어도 우리는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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