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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27. 2024

슬기로운 골절 생활 (2)

고난의 여정 (1)


'고난의 여정'이라는 이 글의 소제목만 보면 모험물이나 판타지의 거창한 부제일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는 몽골에서 다리가 골절된 뒤 한국에 오기까지 이틀간의 여정이 엄청난 모험이자 비현실적인 판타지이기도 했다. 사실은 아직 객관화가 덜되어 골절될 때의 끔찍한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전에, 몽골에서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몽골 자체는 너무나 황홀했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다. 몽골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다시 갈 생각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지라 한여름에 맞이한 몽골의 시원한 바람은 생명과도 같았으며, 평소에 순간순간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발화하지 않는 나의 입에서 좋다는 말을 끊임없이 나오게 했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때마다 좋다, 시원하다, 천국 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으니 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경이로워 마이너스도 한참 내려가는 나의 극악한 시력도 이곳에서 자연을 보다 보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마디 말보다는 몽골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 주는 것이 더 확실할 듯하다.





넓고 탁 트인 대자연을 보고 싶었던 상황에서 몽골은 그 모든 욕망을 충족해 주었다. 밤에 보았던 별들은 별자리뿐만 아니라 금성 같은 행성까지도 보여서 신기했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렸던 차 안에서 잠에 취해 가물가물한 눈으로 보았던 초원과 그 위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동물들. 트레킹을 하면서 보았던 광활한 바위들과 언덕들. 게르에 걸쳐져 있던 노을과 쌍무지개. 게르 안에서 마셨던 맥주와 게르 밖에서 돗자리를 펴고 눈앞에 펼쳐진 별들을 보며 마셨던 맥주들. 생각보다는 정적이었지만 평화로웠던 낙타 타기와 생각보다 동적이어서 기를 쓰고 올라갔던 모래 썰매. 제2의 고향이라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웠다.






이와 같은 행복한 순간을 열흘간의 여행 동안 내내 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에서 그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건이 일어난다.


투어 4일 차, 욜링암 트레킹을 던 중이었다. 평지 트레킹이고 승마 체험과 걷기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후의 일정에 말타기가 있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걷기를 선택했다. - 사고가 난 이후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후회하는 감정에 따라 이때 승마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아빠가 말씀하셨는데,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린다고 한들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어 있고 나는 유난히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 가는 길은 수월했다. 멋진 암벽들을 보며 바람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말의 배설물을 피하느라 바닥을 자주 쳐다봐야 했던 것을 제외하면 괜찮았다. 중간에 개울을 한 번 건너야 했는데 점프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번에 성공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가는 길에 개울 건너기에 성공했다고 해서 오는 길에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워낙 얕은 개울이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한 번만 건너뛰면 되는 거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양말과 신발이 다 젖는 것을 선택했어야 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복기하다 보니 또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진다. 사고는 순식간이지만 회복은 무척 더디므로.) 평소에 몸을 사리는 편인데도 험한 곳이 아닌 평탄한 트레킹이라 방심했다.


자신감 있게 점프를 했는데 오른쪽 다리가 물에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졌다. 그 뒤에 무의식적으로 왼쪽 다리를 무리하게 디디려다가 왼쪽 다리가 골절되었다. 나중에 엑스레이를 찍은 뒤에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지만 안쪽 복숭아뼈는 완전히 박살 났고, 바깥쪽 정강이뼈도 부러졌다. 이 모든 일은 5초? 아니, 3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일어났다. 순식간에 기괴하게 뒤틀린 발목을 보면서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귀에는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양손으로 발목을 부여잡았다. 골절인들은 대부분 사고 당시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는데, 내 경우에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입에서는 '어떡해, 어떡해'라는 말만 연신 나왔고, 너무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기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나의 사고 광경을 목격한 가족들이 기겁하며 달려왔다.


혼이 나간 상황에서도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개강은 어떡하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사고가 난 시점이 하필이면 개강을 2주가량 앞두고 있던 때였다.


아, 직업이란 무엇인가. 사고가 나는 순간에도 그 걱정부터 들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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