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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23. 2024

슬기로운 골절 생활 (1)

프롤로그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벼르고 벼르다가 마음먹고 몽골 가족 여행에서 난생처음 다리가 골절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낙타나 말을 타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험한 곳에 갔다가 그런 것도 아닌 평지 트레킹을 하다가 말이다. 왼쪽 복숭아뼈가 박살 나고 정강이뼈도 다쳤는데 사고를 당할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이게 꿈인가 싶었다. 몽골에서 한국에 와 수술하기까지 영화 한 편 찍었다.


몸과 정신을 추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활동적인 성격에 일도 많이 하는 편이어서 벌여 놓은 것이 많아 수술 후 정신이 들자마자 뒷수습부터 해야 했다. 오프라인 업무와 일정들을 급하게 취소하면서 사고가 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다친 다리를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다쳤는지를 물어봐서 또다시 그 과정을 설명했다. 수십 번 말하면서도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회복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길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하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생에서 겪고 싶지 않았던 골절 사고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최대한 긍정적이고 슬기롭게 골절 생활을 헤쳐 나가고자 한다. 한 달 넘게 병원 생활을 하면서 별별 사람을 만나고, 별별 일을 겪고, 별별 감정을 느끼고,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다 지나가는 일들이지만 이 시간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역시 기록뿐이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유용했던 물품들, 통합 간병실에서 돌봄을 받았던 경험, 거상 휠체어 생활과 목발과의 만남, 병원 밥과 바깥 음식과 뼈에 도움이 되는 여러 식품들, 병실에서의 재택근무와 온라인 줌 수업, 유니폼 같은 병원복과 다양성을 주었던 헤어스타일, 반깁스와 통깁스를 했을 때의 여러 통증과 간지러움과 저림, 구원자와도 같은 깁스 용품들, 다인실에서 만났던 유쾌한 사람과 귀여운 사람과 난감했던 사람들, 드디어 바깥나들이가 가능해졌지만 공간적 한계로 근처밖에 갈 수 없는 어려움, 따뜻하고 다정한 방문과 메시지들 등등에 관해 차근차근 풀어 나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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