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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Oct 24. 2024

슬기로운 골절 생활 (13)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귀여운 사람




어떤 상황이든, 어떠한 장소에 가든 그 생활과 감정을 좌우하는 가장 큰 기준은 사람인 것 같다. 장기 입원을 하면서 병원과 병실을 여러 번 옮겼고, 그만큼 많은 입원 동기들을 만났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병원에서도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이 흐르면 아팠던 기억이나 병원 시설 등은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연령대도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했지만 입원 '동기'라는 점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병실에서 같은 환자복을 입고 같은 디자인의 침구를 쓴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없는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다.









1. 좋은 사람


나는 운 좋게도 대부분 좋은 사람들과 입원 동기가 되었다. 특히 처음에 공동 간병인실에 있었을 때 유쾌하신 분들이 많아서 삭막한 병실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장부 스타일이면서 정이 많았다. 교통사고로 입원했지만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그동안의 병원 순례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했던 분이 있었다. 특히 대규모의 공장식 치질 수술 병원에서 수술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는데 머릿속에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그려질 정도였다! 종교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BGM과 음식에 비유되었던 냄새 등등 - 공장식이라면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던 강남의 미용실만 경험해 봤던 터라 수술을 그렇게 진행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병실에서도 입원 기간에 따라 침대 위치가 다르고 서열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한 분의 유쾌한 동기는 내가 재입원했을 때 일부러 병실에 찾아와서 안부를 물을 정도로 정이 많았다. 배우자와 티격태격하면서 예능에서와 같은 케미를 보여 주었다. 나와 간병인 선생님, 입원 동기와 작당하여 배우자에게 몰래카메라를 시도하기도 했다. 입원 동기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내 옆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마치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퇴원한 것처럼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게 연기라서 배우자가 입원 동기가 어디 갔는지 물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옮겼......."이라고 얘기해서 망칠 뻔했다. 다행히 내 목소리가 작았고, 간병인 선생님이 베테랑 연기로 "이미 퇴원해서 집에 가고 없다."라고 하자 배우자는 무척 당황하고 놀랐다. 입원 동기는 (웃음을 참으며) 벽을 보면서 등 연기를 실감 나게 했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놓는 것을 잊어 전화를 걸자마자 들키기는 했지만, 모두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 외의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보호자들이었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을 알고 식판을 대신 반납해 주었다. 화장실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 택배를 가져와서 뜯어 주거나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 주기도 했다. 한방병원에서는 나만 새파랗게 어린데도 어르신들이 내 식판을 반납해 주어서 황송하기도 했다....... 보답은 되지 않겠지만 나도 간식을 나누어 드리거나 장기 입원자로서 팁들을 알려 드리고자 했다. 의료진들이 처치를 해 줄 때마다 고맙고생 많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던 어르신도 기억에 남는다.





병원에서 일하시는 직원분들과 간호사 선생님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퇴원하는 날 환자복 주머니에 쿠키를 몇 개씩 넣고 다니면서 만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드렸다.





2. 나쁜 사람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나쁜 사람도 드물게 있었다. 가장 심했던 분은 이런 말을 현실에서 가급적 쓰고 싶지 않지만 '빌런'에 가까웠다. 무통 주사부터 시작해서 수액과 항생제 등등의 주사를 모두 거부하고, 밤에 기저귀를 차는 것도 거부해서 밤늦게 화장실을 가며 모두의 잠을 깨우고, 팔을 다쳤는데 다리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간병인 선생님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수시로 병실을 이탈하여 돌아다녔다.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무방비하게 벌컥벌컥 꺼내고, 수술 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팔을 계속 흔들었다. 낙상 방지를 위해 올려야 하는 침대 난간도 절대로 올리지 않았다. 나도 답답해서 내 경험담을 근거로 지켜야 할 수칙들을 이야기해 봤지만 오히려 그분은 더 극대노할 뿐이었다. 결국 간병인 선생님뿐만 아니라 의료진들까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럴 거면 도대체 병원에는 왜 입원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같은 병실은 아니었지만 술 취해서 들어온 환자, 당장 퇴원하겠다며 주삿줄을 뽑고 피를 계단까지 흩뿌리면서 달려가던 환자도 소란의 주범이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고.


또 한 사람은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너무나도 독실한 나머지 시도 도 없이 큰 소리로 기도를 해서 괴로웠다. '주여!'를 어찌나 크게 외치던지....... 나중에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기도 내용까지 절대 알고 싶지 않다. 기도는 속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종교에 편견은 없지만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은 하나만 하지 않아서 소리를 크게 틀어 놓고 동영상을 봐서 몇 번 말씀드리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대부분 청력이 안 좋기는 하지만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공용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개인 텔레비전이 다 있는데, 옆 침대에서는 이어폰을 껴서 화면만 보이고 그분은 소리를 켜 놓아서 화면과 소리가 분리된 채 드라마 강제 시청을 한 적도 많다. 모두가 아픈 환자들의 공간이니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당신만 아픈 게 아니랍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다. 아프다면서 보호자인 딸에게 어찌나 짜증을 많이 내던지 그걸 일일이 다 받아 주는 보호자가 존경스러웠다. 또한 이분은 반대로 청력이 유난히 예민해서 생활 소음 하나하나에 깜짝 놀라 부담스러웠다. 속으로 놀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아, 깜짝이야!"를 남발하니 부담스러웠다. 냉장고 닫는 소리와 침대 난간 내리고 올리는 소리까지 지적하니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본인은 낮이고 밤이고 대화 소리 데시벨 줄일 생각 하나 없었으니, 내로남불에다 역지사지 안 하는 사람은 배려해 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3. 귀여운 사람


함께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하루라도 빨리 나갔으면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존재 자체가 귀여워서 함께 있는 동안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


유일하게 이름까지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는 '주크박스 할머니'는 같은 병실뿐만 아니라 다른 병실에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병원에서 인기가 많았다. 체구도 아담하고 목소리도 귀여운데 수시로 노래를 부른다. 그게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즐거웠다. 가사를 잘 들어 보면 부정적이거나 슬픈 내용들이 많은데 구성지게 잘 불러서 그런 느낌을 잘 살리는 것 같다. 자녀분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심심하니까 노래를 불러 준다고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하하하"로 고저 없이 내는 웃음소리도 귀엽고 밥을 잘 드시는 것도 귀여웠다. 만화 캐릭터 보는 느낌이라서 예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옆 침대에서 할머니를 계속 관찰했다. 인기가 많아서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 주었다.


또 한 명의 귀여운 사람은 어린 여자아이였는데 목소리부터 너무 귀여웠다. 엄마와 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종알종알 대화하는 것도 귀엽고, 다쳤는데도 잘 안 울고 씩씩하게 있는 것도 기특했다. 그러다가 한 번 주사 때문에 크게 울었을 때는 안타깝기도 했다. 보호자가 잠시 외출했을 때도 얌전히 잘 있고, 보호자가 지시한 대로 보호자 부재중에 간호사에게 요청할 일이 있을 때 나한테 와서 부탁했는데 너무나도 야무졌다. (사실 이모뻘에 가까운데 '언니'라고 불러 주었다.) 그렇게 야무지고 예쁜 딸이 있는 보호자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귀여운 사람을 정리해 보니 역시 남는 건 사람, 그리고 사람과 엮인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캐릭터가 다양해서 장기 입원을 하는 동안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동시에 의료진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환자들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의료진들은 그 스펙트럼을 다 감당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가 생길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노련하게 대처하는 모습들이 프로답고 멋있었다. 어르고 달래기의 선수들이다. 병원 밖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지니고 다양한 삶을 살겠지만 병원 안에만 들어가면 모두 일개 환자 1이 되는데, 그와 같은 환자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니 시각과 시야가 달라지기도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인생 공부, 사람 공부도 한 것 같다. 이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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