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골절로 거의 두 달간 병원에 있었으니, 남들보다 입원 기간이 긴 편이었다. 물론 통깁스 기간 때 발견한 염증이 장기 입원의 주요 원인이 되긴 했지만 골절 자체도 심해서 2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통깁스 기간 동안 집에 가지 않고 한방병원에서 요양을 한 것도 원인이 되었다. 염증 치료도 거의 끝나 가니 몸이 저절로 편해져서 병원에 있는 것이 무척 지루했다. 하루라도 빨리 퇴원해서 재활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퇴원은 원장님의 허락이 필요해서 매일 원장님이 회진 도는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렸다. 바람같이 지나가는 회진 시간이기에 질문도 미리 생각하고 퇴원 이야기를 꺼내 보기도 했으나, 퇴원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피 검사를 해서 염증 수치가 좋아야 하고 원장님의 판단도 중요했다. 퇴원 예정 날짜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던 와중, 드디어 실밥을 뽑고 소독이 끝났으며 항생제도 주사가 아니라 먹는 약으로 바뀌었다. 굳이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퇴원 시그널인 것이다!
드디어 언제든 퇴원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회진 때 확실하게 퇴원 허락을 받자마자 바로 당일 퇴원을 했다. 그동안 하루하루 퇴원을 기다렸던 기간이 긴 것과는 달리 퇴원 수속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보험 서류는 외래 때 받아도 된다고 해서 원무과에 수납만 먼저 했다. 쇄골의 C-line을 제거하고 소독한 뒤 간호사실에서 약을 타 왔다.
짐 정리를 하고 퇴원 후에는 혼자 머리를 감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가위로 머리를 짧게 잘라 주었다. - 원래 미용실에 갈 생각이었으나 검색을 해 보니 미용실에 대부분 문턱이 있고 휠체어가 들어가서 머리를 감는 것도 어려워 길이만 짧게 하는 건 남동생이 어렸을 적 이발을 해 준 경험이 있던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 그래도 입원하는 동안 가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감겨 주어서긴 머리를 유지한 덕분에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기에 가장 편한 머리는 뒤로 묶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묶는 것이다. 좀 민망할 수도 있지만 양 갈래로 땋는 머리가 편하다. 머리를 한쪽으로 모아서 앞으로 묶기도 하고 작업을 할 때에는 위로 틀어 올리기도 했다. 머리를 자주 못 감기 때문에 머리를 감은 시점부터 한쪽으로 모아서 묶기 -> 위로 틀어 올리기 -> 양 갈래로 땋기의 순서로 헤어스타일을 바꾸어 주었다.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입원 생활이 더 힘들었는데, 옷은 환자복 하나이니 헤어스타일에라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샤워실에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고 환복을 한 뒤 옆자리에 새로 온 사람과 인사를 하고(간단한 입원 팁도 알려 주었다.) 짐을 옮겼다. 중간중간에 쿠키를 드리며 인사를 하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간호사실과 공동 간병인실에 들러 인사를 하고 떠났다. 드디어 컴백홈이다!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는 실감도 잘 안 나고 얼떨떨했다. 여름에 몽골에 가서 병원에 두 달간 있는 동안 길가의 풍경은 가을로 바뀌어 있었다. 전날 잠을 많이 자지 못했지만 설레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병원 침대와 병원복을 벗어나다니! 더 이상 주사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니! 답답한 병실 공기를 더 맡지 않아도 된다니! 모든 것이 감격스러웠다.
집에 도착한 뒤에는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근처 공원에 산책도 갔다. 가족 단위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실컷 구경했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는 하늘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다쳤을 때 사복을 입고 몽골 판초를 덮고 휠체어를 탔기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사이에 많은 과정이 있었다. 수술도 잘 끝나고 상처도 잘 아물었고 뼈도 잘 붙어 가는 상태로 오게 되니 감격스러웠다.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간 모습. 오랜만에 일상의 평화를 느꼈다.
퇴원해서 집에 온 자체로도 감격스러웠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집에서 거의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기에 웬만한 일상생활은 가능하도록 세팅해야 했다. 집에서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재활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있거나 체력 소모가 덜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편하게 있었다. 식사도 다 가져다주고 가족들이 와서 머리도 감겨 주니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목발이었는데 아직 목발이 익숙하지 않아서 집 안에서는 사무용 의자를 타고 다니며 거의 대부분의 일을 해결했다. 사무용 의자를 휠체어라고 생각하니 적응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사무용 의자가 생각보다 잘 밀리지 않아서 오히려 안전했다. (물론 안 다친 발로 밀고 다녀서 그 다리도 따로 관리를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걱정을 제일 많이 했던 화장실도 사무용 의자로 해결했고, 방과 방 사이의 문턱도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식으로 수월하게 넘어 다닐 수 있었다. 앉아서 밥을 차려 먹거나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 물론 요리를 하는 것에는 제약이 많아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것 위주로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하는 데에도 신경 써야 한다. - 갑옷을 입는 것과도 같은 무거운 보조기를 차고 다녀서 비교적 안전했기에 베란다에 나가서 의자에 앉아 식물에 물을 주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시도해 보았다. 단, 아직은 거상 자세에 익숙해서 다리를 조금만 아래로 내려도 피가 쏠려 힘들어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는 오래 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소파를 병원 침대처럼 생각하고 다리를 뻗어 작업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선택했다. 잘 때는 반깁스로 바꾸고 발 베개에 거상한 채 잤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활이 되긴 했지만, 목발 연습이 시급했기에 하루에 두 번씩 목발 연습을 했다. 유튜브로 동영상들을 보면서 머리로 익힌 뒤 집 안을 목발로 왔다 갔다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 소모가 무척 컸다. 5분만 연습해도 땀이 나고 몸이 힘들어져서 전신 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입원 기간 동안 빠진 근육을 생각하면 근력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목발 연습 시간을 늘려 볼 계획이다. 평지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계단은 아직 엄두도 안 나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서서히 연습해 볼 생각이다. 휠체어를 마스터하면서 팔이 튼튼해지는 기분이었는데, 목발을 마스터하면 다른 신체 부위도 튼튼해질 것 같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편히 있는 동안 체력이 떨어졌을 테니 체력을 올리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집에서 최대한 많이 움직이려고 하는 동시에 보조기를 찬 다리는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재활 역시 시간 싸움이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 한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걷고 싶지만,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느리되 꾸준히 실수 없이 해서 믿음직스럽다.)'의 재활을 새기면서 하나씩 차근차근해야겠다. 재활 병원에서도 골절이 심해서 기간을 길게 봐야 한다고 했으니 심란해하지만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앞으로 당분간 수술 병원에도 외래를 가고 재활 병원도 폭넓게 보면서 재활에 신경 쓸 생각이다. 휠체어 타고 날아다녔으니 그다음은 목발로 날아다닐 차례다. 그 뒤에 목발을 떼고 내 두 다리로 날아다닐 때까지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