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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Oct 26. 2024

슬기로운 골절 생활 (15)

에필로그




퇴원한 지 일주일 뒤에 간 외래에서 뼈가 잘 붙고 있다는 긍정적인 진단을 받았고, 하지만 워낙 크게 다쳤으니 아직 디디는 것은 조심하라는 당부도 들었다. 재활도 무리할 필요 없이 발을 들고 내리는 간단한 운동을 처방받는 것부터 시작했다. (탄력 밴드 운동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동안 과보호하느라 발을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간단한 운동을 하는 것도 긴장되었지만 가동 범위를 점차 늘려야 하니 매일 꾸준히 할 생각이다. 재활은 본인의 의지와 성실성이 90프로를 좌우하는 것 같다. 조심스럽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운동도 꾸준히 해야겠다.





퇴원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입원했던 일이 꿈같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나쁜 일을 더 빨리 잊는 편이라서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





'날아라, 휠체어!'처럼 휠체어를 타고 날아다녔지만 이제 휠체어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목발 사용을 겸할 생각이다. 목발을 집에서 하루에 두 번씩 연습한 뒤, 외래로 수술 병원을 갈 때 처음으로 외출을 시도했다. 예상외로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을 목발로 가는 게 힘들었고, 한 번에 오래 가기는 힘들어서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목발을 짚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자세였다. 아직 한 발을 디디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오랜 입원 생활로 다리의 근육이 빠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서 있는 일을 했었기에 10분도 서 있는 게 힘들다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지만, 근육을 키워서 이 또한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체력과 근력을 늘리는 것이 재활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익숙해지면 휠체어보다는 목발이 밖을 다닐 때에는 더 편할 것 같다. 휠체어로 날아다닌 것도 사실상 엘리베이터가 있고 내부도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병원 안에서였고, 밖에서는 혼자서 다니기 힘들어 보호자가 동행해야 했다. 휠체어를 타 보니 밖을 다니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되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게나 식당을 검색할 때 입구에 문턱이나 계단이 있는지부터 보게 된다. 생각 이상으로 입구가 평지로 된 가게가 드물었다. 평지로 되어 있어도 입구가 좁으면 휠체어가 못 들어간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휠체어는 다른 층에 갈 수도 없다. 아스팔트 길은 울퉁불퉁해서 덜컹거리며 지나가면 다리에 충격이 크게 올 것 같았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건물은 거의 없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화장실 입구에 문턱이 있는 경우도 많다. 경사면도 많아서 혼자서는 길 하나 건너는 게 힘들 정도였다. 이 정도니 병원 일정 아니면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외출을 할 때도 택시나 가족들의 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지금도 보조기를 찬 채 목발을 짚고 있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 무섭다. 혼자서 목발로 자유롭게 외출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목발을 쓰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고 바닥을 많이 보게 되어서 양옆의 시야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루하루 나아질 것이다. 조만간 혼자 목발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 물론 목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겠지만 - 병원과 작업실에 다니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도 자고 일어났을 때 '이 모든 것이 혹시 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곧 현실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두 다리로 걸어 다녔던 게 전생의 일 같다. 다시 두 다리로 걷게 되는 날엔 감격해서 울지도 모른다. 그날까지 지난한 과정들을 겪어야겠지만 힘들 때마다 가족과 지인들이 보내 주었던 다정한 메시지들을 생각하며 힘내야겠다. 15회 동안 골절 생활에 관해 최대한 다양하게 풀어내려고 했는데, 프롤로그에서 계획했던 내용들은 다 쓴 것 같다. 그래도 글을 끝내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가 되면 '슬기로운 골절 생활' 후속 편으로 재활 일기도 기록해 보고 그림도 그려 봐야겠다. 조만간 이 모든 기록을 웃으면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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