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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n 28. 2021

우물 밖 쳐다보기

너무나 넓은 세상, 너무나 다른 학교

우물 속에서만 사는 개구리와 우물 밖을 구경하는 개구리 중 어느 개구리가 더 행복할까? 나는 지난 며칠 새에, 내가 사는 우물과는 전혀 딴 세상인 우물들을 보고야 말았다.




도교육청 교육연수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신규 고3 담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진학 전문가 양성 연수였다. 평일 수업마저 미루고 달려갔던 연수에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고야 말았다.


멀리 서울에서 8 학군 진학부장들이 줄줄이 내려와 자신의 학교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크게는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에서부터 작게는 세특 작성을 어떤 서술어로 끝맺을까에 대한 것까지 매우 섬세하고도 방대한 정보를 각자가 앞다투어 쏟아놓는다. 그간 나는 지금의 학교가 제법 진학 쪽으로 빠삭한(?) 학교라고 생각했다. 진학 실적도 우수했다. 일반고치고는 도에서 한 손으로 셀 순위의 실적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 학군 학교들의 실정을 직접 마주하니, 그리고 각종 특목고와 자사고 및 자공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곳은 내가 있는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의 학교들이었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의 정시 지원을 두고 교육 전문 저널에서나 볼 법한 정도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다음 차례로, 강북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과별로 교수들의 특징과 세부 전공을 읊는다. 그리고 최근 전임 사정관들의 학생부 평가 후일담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도교육청 진학과 장학사도 온갖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6월 모평 결과를 바탕으로 문이과 통합 후, 계열별 등급 등락폭을 상세하게 짚어 들려준다. 진학은 열정이나 끈기로 이루어지는 판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정보와 전략의 싸움이요, 학생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겨내기에는 불가능한 판이었다. 나는 홀로 진학을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멋모른 채 얼마나 위태로운 싸움을 견뎌냈던 것일까.


질의응답 시간에 장학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받았던 민원을 털어놓았다.


요즘 학부모들, 학생부 기록은 교사를 잘 만나야 성공할 수 있는데 모든 게 운에 달린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도에서는 어느 교육청보다 학종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요지는 우리 교육청은 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과연 학부모의 민원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대답이었을까. 같은 학교 안에서도 담임에 따라 학생들의 창체 기록이 너울을 뛴다. 관리자나 진학부가 강하게 교사들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분위기의 학교가 아니라면, 저 민원을 넣은 학부모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일산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대놓고 이런 말도 한다.


공립학교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립학교를 못 이깁니다. 제가 있어보니 그래요. 생기부 쓰는 연수를 아무리 해도 금세 물이 바뀌니 허사입니다. 냇물에 잉크를 푸는 격이에요.


과연 그렇다. 대다수 연수를 하러 내려오는 소위 '잘 나가는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명문 사학에 있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런 명문들은 하나같이 각각의 학교에서 각자만의 노하우가 충분히 쌓여 있었다. 내가 있는 곳도 사립학교인 덕에 많은 선생님들이 입시 앞에서 자신의 기록을 뜯어고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나마가 우리 학교의 저력이었던 셈이다.


듣다 보니 상상도 못 할 학교 사례가 줄줄이 이어진다. 어느 학교에서는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년부 단체로 펜션에 들어가서 1번부터 끝번까지 전교생 생기부 디자인이 끝나야만 귀가할 수 있는 죽음의(?)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한다고 한다. 총성만 울리지 않는다 뿐이지 전국의 고등학교들은 입시라는 전쟁 판에서 사정없이 뒹굴고 있었다. 학교마다 전력의 차이도 현격했다. 교사 한두 명으로는 학교라는 판을 바꿀 수 없다. 진학 전문가가 많이 모여있고, 교사들의 열정이 넘쳐나며 진학에 있어서 공격적인 학교일수록 이 전쟁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전쟁통의 최전방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괴수들의 전쟁판에서 선두 주자들을 넋 놓고 보고 있던 것도 잠시, 대학 동기로부터 연락 하나를 받았다.


너네 지역 고등학교 어떠니? 학교에 적응을 좀 못하는 아이 하나가 가기에 괜찮은 곳이 있을까? 되도록이면 꼭 기숙사가 있으면 좋겠다.


무슨 사연인고 하니, 부모님은 재혼을 하여 자식을 사실상 버리다시피 한 상태이고, 아이는 조부모와 함께 사는 중이라고 한다. 군 단위 농어촌 지역에 사는 중3 학생인데 진학을 앞두고 어떻게 할지 고민이란다. 시골에 계속 있자니 대입이 걱정이고, 도시로 나오자니 거주지가 마땅찮아 걱정이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간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고등학교 기숙사는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도시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 억지로 간다면 인근 도시에 있는 새부모의 집으로 얹혀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아이가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있는 지역에 주말에까지 기숙사를 운영해주는 학교가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주변에 수소문을 해 보아도 내가 있는 지역에는 적당한 학교가 없다. 차라리 대도시로 나가면 어떻겠냐고 권하였지만 그것도 녹록지가 않다고 한다. 조부모가 원하는 것은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웃으며 고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쭙잖게 주워들은 입시에 대한 내용은 말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런 학생이 행복하게 3년을 보낼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결국 서로 아쉬움만 주고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그렇다. 세상의 온갖 아이들이 모여들다 보니, 위로 쳐다보면 하늘이 끝도 없이 높고, 아래를 쳐다보면 바닥이 끝도 없이 깊다.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실망하는 것도 제게 주어진 것이 있어야만 한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교사든, 각자가 주어진 것만큼 도전을 하고, 주어진 것만큼의 실망을 한다. 노는 물이 다른 학생들은 서로의 아픔을 걱정하지 않는다. 천국이 지옥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만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너무나 다른 두 가지 세계를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의 위치를 가늠해본다. 이 위치는 어느 정도의 높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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