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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Feb 07. 2023

대학은 학종 평가를 어떻게 할까?

부산 미래교육 네트워크 교사연수 (23.01.26.) 후기

지난달, 부산권 4개 대학이 협동으로 개최한 2024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계획 및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연수에 운 좋게 참여했다. 대입 연수를 티켓팅하듯이 시간을 재며 신청해 보긴 처음이었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두 학교의 사정관들을 직접 만나고 작년도 합격생들의 서류를 바탕으로 모의 평가를 해볼 수 있었다. 진학 현장에 있으면서도 실제 평가 시스템은 보지를 못해서 학생들에게 상담을 해 줄 때도 어딘가 깜깜이 속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실체를 보게 된 것이다. 오전에는 국립대 한 곳, 오후에는 사립대 한 곳의 연수를 참여했었는데, 각 대학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1. 부산권 모 국립대


우선, 국립대라서 그럴까,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최근 지방의 모든 대학이 그렇듯이 가장 처음으로 언급된 문제는 단연 학령인구 감소였다. 그러나 23학년도 경쟁률을 보여주며 자교는 아직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수치상으로는 수시와 정시를 합쳐 대략 8:1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통상 3:1 이하의 경쟁률부터는 실질적 미달로 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어찌어찌 순방하고 있는 셈이었다.


연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학생부 종합전형 평가를 위해 사정관들이 사용하는 서류종합평가시스템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학사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의 레이아웃부터 평정에 제공되는 자료 유형까지 많은 것들이 신기했다. 교육청 전달 연수에서 '블라인드 평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지켜달라고 주문을 받곤 했는데, 프로그램으로 실제 생기부를 띄워놓고 보니 이제야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각 학생들의 인적사항이나 출신교는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교과 성적 평가 척도에서 지원자 개인의 정보와 동일한 고교에서 해당 대학으로 지원한 지원군 전체의 평균적인 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 과목과 주요 과목(국영수사과) 비교란을 따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대략적으로 해당 고교의 수준과 학생의 성취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올 초 교육청 연수에서부터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교과 세특의 작성 방향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간은 교과 세특에 진로 내용과 연결 지어 통일성 있는 생기부 작성을 지향했었는데, 올해부터는 그 기조가 바뀐 것이다(정확하게는 우리 교육청의 기조가 이제야 바뀐 것이다). 해당 대학의 사정관은 '학업 역량' 평가를 위해 교과 세특에서는 해당 교과 자체의 성취 수준을 알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모의평가를 직접 해보니 사정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좌측에 학생의 생기부가, 우측에 평가지가 뜨는 방식이었고 평가지는 5점 척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분석적 평가로 평정 영역을 나누어두다 보니, 교과세특을 전공 내용으로만 채워버리면 '전공적합성' 부분에선 만점을 받을 수 있겠으나, '학업 역량' 부분에서는 평정을 하기 곤란해진다. 게다가, 학교 수준이 좋지 못한 곳의 학생이라면 해당 학생의 학업 능력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비교하여 과연 진정으로 우수한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따라서 등급만으로 학생의 학업역량을 판단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 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 학생이 왜 2등급인가에 대한 부연설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으로 세특을 읽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로 내용만으로 채워져 있다면 아무래도 한 구간 낮은 점수로 손이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문이과 구분에 대한 이슈도 언급했다.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대학은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을까. 고교학점제가 더 확대된다고 하지만 교육정책이 대입으로까지 일관되게 같은 의도로 해석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교육 정책의 꽃이자 결실인 대입 현장에서 특정 학과마다 과목 선택의 '정석'이 생겨버린다면 도전적인 선택을 한 학생이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란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2. 부산권 모 사립대

 

오후와 함께 시작된 해당 학교의 연수에서는 분위기가 다소 어두웠다. 아니, 그네들은 밝게 하려 노력을 하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는 어둡게 느꼈던 것 같다. 해당 대학에서도 학령인구 감소 문제가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그리고, 해당 문제에 대하여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입학처 담당자가 ‘OO대학은 주로 3~5등급 학생이 지원한다’고 밝혔으나, 학교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대입 상담 프로그램에서 나타나고 있는 등급 분포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과거엔 그래도 명문의 반열에 올랐던 학교이건만 몇몇 과는 이제 입결이란 말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 서울 최상위권 학과들이 정시에서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대학의 움직임을 보고 자교의 인기학과 배치를 전략적으로 바꾸곤 했다. 해당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상위권 국립대학과 겹치지 않는 군에 인기학과를 배치했다는 말을 곁들이며, 애매한 등급대의 학생들을 위한 입시 전략을 상세히 소개해줬다.


서류 종합 평가 시스템은 오전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진학사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했다. 아마, 국내 대다수의 대학이 그렇지 않을까. 스스로 대입 평가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비싸고 피곤한 일이다. 재밌는 점은 평정 척도가 오전의 국립대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전공적합성'을 세분화하여 평가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사정관들에게 평가의 근거를 따로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학종 평가에 노하우가 쌓인 대학답게 평정 과정이 체계적이었고, 최소한 '초보 사정관'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허둥대게 하지 않았다. 그 덕일까, 동일한 학생에 대하여 다수의 교사들이 평가한 결과도 대부분 일치했다. 종합평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신뢰도가 상당히 다잡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 서류 종합 평가 시스템 특징     


이제, 서류 종합 평가 시스템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학에서 학종 평가를 할 때, 사정관들은 서류종합 평가 시스템을 사용하여 생기부를 평정하게 된다.  다음은 필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마주하고 세네 시간가량 평가를 진행하며 주관적으로 느낀 바들이다.


  가. 키워드 중심의 평가

평가자에게 제시되는 세특에는 특정 키워드에 형광펜 칠이 되어 나타난다. 사정관도 사람인지라 긴 글을 계속해서 집중하여 읽기란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생기부를 읽는 과정에서 평가자는 자연스럽게 키워드 위주로 평정을 실시하게 된다. 우선 주요 키워드의 출몰 빈도로 학생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을 파악한 후, 해당 전공과 직접적인 연계가 되는 과목부터 보는 것이다.


  나. 과목 선택의 중요성

사정관이 자신의 평정 과정을 시범보이는 과정에서 맨 처음 학생의 주요 교과 이수 여부를 우선 점검했다. 가령 기계공학과를 지원한 학생이 물리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로 과목이 다양화될수록, 실제 대입의 맥락에서는 ‘과목 선택의 정석’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이공계열 진학 희망 학생의 경우 물리 선택 여부가 지속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등급을 확보하는 것이 부담이 크겠으나, 가급적이면 선택하는 방향으로 권유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다. 평가자의 피로감에 대한 고려

진학사 평가 시스템의 가독성이 좋지 못하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니터 화면으로 많은 글을 읽는다는 일 자체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유년기부터 태블릿을 활용하여 공부하던 세대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대다수의 글을 종이로 뽑아서 읽어야만 속이 편안한 부류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을 통한 평정 환경은 단순한 성적추이 정도는 그래프를 통해 빠르게 비교할 수 있겠지만, 세특은 많은 양의 글을 ‘독해’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평정자에게 심한 피로를 유발한다(대부분 사정관들은 연배가 있는 편이다). 따라서 단문으로 작성된 두괄식의 문장 서술이 필요해 보인다. 간혹, 이공계열 세특에서 지나치게 학술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복잡하게 서술한 세특이 보였는데, 비전공자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대학에 따라서는 사정관이 해당 학과의 전공자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하니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평가자가 문장을 읽는 과정에서 피로감을 덜 느끼도록 작성될 때 학생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이끌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으로 연수를 통해 느꼈던 대학 입학처의 설명과 학종 평가에서 사용하는 서류 종합 평가 시스템에 대하여 필자가 주관적으로 느낀 바를 간략히 풀어 보았다. 주관적인 생각이다 보니 편협하거나 잘못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교단일기의 차원에서 필자가 느낀 바를 허물없이 적은 것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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