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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Mar 29. 2023

도화가 소춘풍하는구나

올해도 찾아온 벚꽃, 화사한 학교

교정에 벚꽃이 한가득이다.

우리 반 부반장이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벚꽃사진 찍어요.


작년 고1을 끌고 함께 올라와서 그런가 이제는 제법들 머리도 크고, 서로 친밀해지기도 하여 끼리끼리 잘들 뭉치고 여러 일도 스스로 도모한다. 그제부터 점심시간이 각반 반장들이 담임선생님을 한 분씩 납치(?)해 가더니 나의 차례인가 보다.


교정에 벚꽃이 제법 많이 폈다. 남쪽은 꽃이 일찍 펴서 이젠 거의 저물 무렵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떨어질 때가 더 일품이라 대학원으로 향하는 무렵의 시간에 흩날리는 꽃잎들을 와이퍼로 치우며 달리다 보면 마음속 몽글거림을 느끼곤 한다.


고려가요 만전춘별사의 2연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근심 어린 외로운 잠자리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쪽 창문을 열어젖히니 복숭아꽃이 피어나는구나.
복숭아꽃이 근심 없이 봄바람에 웃는구나.


비록 나는 화자와 달리 외로움보단 피곤함에 취하는 편이지만 교무실이든 교실이든 어느 창문 넘어로도 복숭아꽃 대신 벚꽃이 가득이다. 괜스레 출근 전 옷의 빛깔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화사한 빛으로 고르게 된다.


선생님들도 이런데 학생들은 오죽하랴.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사진을 찍으려면 휴대폰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구해내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조심스레 부탁해 보거나 사정하기, 떼쓰고 울기, 아니면 몰래 가져가거나 공기계를 가져오기 등등.


사실 학년부의 생활지도는 모든 담임들이 같은 규정으로 엄격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열여덟의 봄은 한 번이지 않는가. 벚꽃도 삼일천하다. 가장 예쁜 며칠을 맞추지 못하면 그 해의 꽃은 영영 가고 만다. 서른 번 넘게 맞이해 본 봄이니 그 아쉬움을 너무나도 잘 안다. 어쩌겠는가.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원망을 듣더라도 조금 모른 척해줘야지... 하려는 찰나, 이미 다른 반은 휴대폰 가방을 통째로 들고 가서 제각각 사진을 찍느라고 바쁜 모양이다. 괜한 걱정을 했군.


웃음꽃 한가득인 반 아이들의 모습을 멀찌기서 쳐다보며 축원의 인사를 건넨다.


많이들 찍고 많이들 즐기거라. 많이 많이 웃어서 너희들의 십 대를 웃음으로 가득 채워 두거라. 그 웃음은 두고두고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꺼내보게 되는 보석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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