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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Mar 11. 2023

결국 일상은 에너지 보존이다.

너 오늘 에너지 얼마나 있어?

오늘 날짜를 세어보니 기관지염을 달고 다닌 지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2월 초,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컨디션은 영 괜찮아 등산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목에서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다.

병원에 가 주사도 맞고 일주일 치 약을 타왔다. 병명은 미세먼지로 인한 기관지염이라고 한다.




일주일 차: 귀 아프고 콧물은 줄줄 나고 목소리가 안 나오는 웃기는 삼중주 시작

분명 열이 나거나 아프진 않았지만 기력이 노쇠해지는 기분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운동은 고사하고 걷지도 못했다. 틈만 나면 어디에라도 누워야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주 차: 귀는 더 이상 안 아프지만 여전히 콧물과 목소리는 안 나왔다.

아니 왜! 주사도 맞고 먹으라는 약도 다 먹었는데 낫지를 않는 건지..

슬슬 일에 대한 감정도 짜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 왜 바람 잘 날 없이 문제는 맨날 일어나는지..


당연한 순서로 생각의 고리는 '말을 왜 이렇게 하지?'부터 '이것까지 내가 해야 해?'로 번져갔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엔 짜증이 넘쳤다.


이내 곧 자의식이 넘치기 시작하더니

뭔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일을 하는가 ->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  나는 왜 사는 가 -> 다 필요 없다

무한루프로 답도 없는 무늬만 철학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3주 차: 허스키해도 목에서 소리는 꽤 잘 나온다.

일에 주체가 바뀌는 흐름을 감지했다.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일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터지면 화내며 수습하고 또 저쪽에서 터지면 울면서 수습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니 팀원들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무작정 러닝을 시작했다.


4주 차: 미약하게 걸걸한 목소리만 남고 다 나았다.

일주일 동안 매일 뛰었다. 막막함, 무기력 등 당장 내놓을 수 없는 해답에 갇히면 나가서 뛰었다. 러닝 성적은 나빴지만 효과는 좋았다.


한때 1~2년 정도 영어공부를 지독히 했을 때가 있었는데 어학연수 안 간 것 '치고' 단기간에 많이 성장했다. 언어 공부를 하며 늘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멍청한 나'를 마주해야 하는 그 짜증의 감정이었다.

그때마다 '아 몰라 tlqkf 그냥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친구들을 웃기곤 했는데, 돌아보니 그 입버릇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참 많이 되었단 걸 깨달았었다.  


'하면 하는 거지 뭐'라는 문장이 러닝을 하던 중 머릿속에 띄워졌고 오랜만에 영어를 돌파해 나갈 때처럼 쾌감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붙었고 다시 일과 나 사이의 주도권을 찾았다.




오늘 글의 주제는 러닝의 중요성이 아니다.

기력이 노쇠한 데 어떻게 뛸 수 있겠느냐? 흐르는 콧물과 컬컬한 목 상태로 2주 차에 러닝을 할 수 있었을까? 난 못했을 것이라 본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 충분한 에너지를
'매일매일' 보존할 수 있느냐 이다.


에너지가 이렇게나 일상의 파장을 주는지 몰랐다.

기관지염 한 달을 겪어보니 체력 관리라는 진부한 단어가 이토록 중요했구나를 피부로 깨달았다.


책임질 무게가 많은 어른에겐 단단한 일상으로 잡아주어야, 누군가의 작은 농담에도 근심 없는 웃음을 건넬 수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도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재미가 없어도 센터를 출석해 운동 할당량을 채우고, 감흥 없는 산책이라도 짧게라도 나가서 걷고, 효과가 없는 듯해도 꼬박 영양제를 챙겨 먹는 일상을 지켜야 한다.


삶에서 의식주를 내 입맛 데로 멋대로 굴수록 에너지만 고갈되었다.

핸드폰 배터리 충전만 하지 말고 오늘 내 에너지양은 어떤지, 모자라다 싶으면 밥부터 챙겨 먹고 영양제 챙겨 먹고 잠시 산책이라도 하며 일상을 지키자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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