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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13. 2019

조카의 애착 인형


 나는 완벽한 조카 바보다. 친구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딸바보나 아들바보가 되어 있어야 마땅할 나이지만, 그러지 못한 탓에 아이를 귀여워하는 모든 마음이 조카에게 향해 있다. 특히 조카의 얼굴에서 나의 어릴 때 얼굴이 스치거나, 조카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행동을 자행할 때 유독 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조카의 애착 인형 이름은 ‘제시’이다. 인형의 이름은 내 동생이 붙여줬다. 유난스럽게도 조카를 만나기 전부터 조카 바보의 증상을 앓았던 내가 준비한 인형이다.
작고 부드러운 흰 토끼 인형. 언젠가 아기들의 애착 인형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나서 곧 태어날 조카를 위해 여행지에서 사 온 것이었다.

조카가 기어 다니게 되었을 때 제시는 조카의 애착 인형이 되었다. 조카가 어디를 가든 그것을 들고 다니는 바람에 엄청 꼬질꼬질해진 제시는 현재 흰 토끼 인형이라는 정체성을 잃은 상태다.

올케 말에 따르면, 인형이 너무 더러워져서 그것을 대체할 토끼 인형을 몇 개 사다 줬지만, 조카가 가장 아끼는 인형은 여전히 ‘첫 번째’ 제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카에게 제시를 사다 준 사람이 나라는 것이 괜히 뿌듯했다.



조카와 제시


 제시가 눈에 안 보이면 조카는 울면서 제시를 찾는다. 엄마 아빠 외에 누군가 안 보인다고 그 대상을 찾으면서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안 보이면 운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두 살의 아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많은 부분에서, 어른의 방식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렸을 때의 방식이 이해가 잘 가는 경우가 많다.

 

두 돌이 막 지난 조카는 요즘 한창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 단어를 내뱉는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조카가 집에 놀러 오면 낱말 카드 공부를 한다. 제시뿐 아니라 온갖 토끼를 좋아하는 조카에게 토끼가 그려진 카드를 집어 들고,

“이거 뭐야?” 하고 물어봤다.

 “제띠.”

“제띠? 제시가 토끼가 맞긴 하는데, 이건 토끼라고 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조카가 대답한다

“제띠야.”

  어차피 토끼라는 발음이 고난도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조카의 대답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토끼가 다 제시로 보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다 그 ‘누군가’로 보.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아무런 수고로움 없이 고모라는 명칭을 갖게 해 준 것도 고마운데, '첫 번째' 제시를 유독 애정하며, '모든 토끼를 다 제시로 보는'  방식마저 고모를 닮아버린 우리 아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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