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장 3절
저는 평화로운 집에 조용히 살던 기름 그릇이에요.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신 후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무서운 빚쟁이가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거든요. 오늘 아침도 집안이 엉망이 되었어요. 오늘은 주인아줌마의 두 아들을 끌고 가겠다고 소리쳤어요. 아줌마는 바닥에 쓰러져서 엉엉 울었고, 저는 그 모습을 보다 보니 돌아가신 아저씨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그분은 원래 하나님을 잘 섬기던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였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빚이 많았나 봐요. 그래서 빚쟁이가 매일같이 찾아와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이 집에 남은 건 저 하나, 그리고 제가 담고 있던 약간의 기름뿐이었어요.
며칠 동안 울기만 하던 주인아줌마는 어느 날 갑자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눈물 자국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그리고 잠시 뒤, 엘리사 선지자와 함께 돌아왔어요.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줌마는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줌마는 손에 빈 그릇들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들어왔답니다!
나는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빈 그릇들을 반갑게 맞았어요. “어? 너희 옆집 애들 아니니? 여긴 웬일이야?”
“응, 예전에 음식 나눌 때 한 번 왔었지? 이번엔 너희 주인이 갑자기 우릴 빌려달라고 해서 온 거야.”
“그럼 너희는 어디서 왔어?” 기름 그릇은 다른 빈 그릇들을 보며 물었어요.
“우리는 뒷집. 근데 왜 우리를 이렇게 많이 부른 거지?”
주변의 빈 그릇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름 그릇을 빤히 쳐다봤어요.
“나도 잘 몰라. 근데...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말에 한 작은 그릇 하나가 벌벌 떨며 물었어요. “무슨 일? 위험한 거야? 윽, 난 집에 갈래…”
“그래도 엘리사 선지자가 아주머니한테 시킨 일이라니까 나쁜 건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자 그릇들은 엘리사 선지자를 힐끗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우리 주인한테 말하는 소식을 직접 들었어.” 한 그릇이 슬며시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어요.
“뭐라고 했는데?”
“빈 그릇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라고 했다고 했어.”
“정말? 우리를? 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요.
그때, 주인아줌마와 두 아들이 다가와서 그릇들을 조심조심 늘어놓았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올리는 거예요! 그러자 빈 그릇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빤히 쳐다봤어요.
“다들 조용히 좀 해봐! 방금 엘리사 선지자가 나한테 있는 기름을 너희에게 부으라고 했어.”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빈그릇들을 진정시키며 말했어요. 그러자 그릇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죠.
“뭐라고? 기껏해야 한 그릇인데 우리 모두에게 나눠준다고? 말도 안 돼! 심지어 난 너보다 훨씬 큰데?” 큰 그릇은 말이 안 된다는 듯,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인아줌마는 내 안의 기름을 첫 번째 빈 그릇에 조심스레 따르기 시작했어요.
“어...? 나한테 지금 기름을 붓고 있네. 어쩌려고..." 빈 그릇 하나가 기름을 받으며 말했어요.
“이번엔 나야!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기름이 남았지?” 또 다른 빈 그릇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어요.
그릇들이 하나둘씩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놀라서 두근두근, 숨도 못 쉬고 지켜봤지요. 여기저기 기름을 가득 받은 그릇들은 놀랍고 좋으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불안해했어요.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나였죠. ‘분명히 딱 한 그릇이었는데… 이게 다였는데… 어떻게 계속 기름이 나오는 거지?’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 순간, 큰아들이 외쳤어요. “이제는 빈 그릇이 없어요!”
그 말과 함께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끝없이 흘러내리던 기름이 마법처럼 뚝 멈춘 거예요! 물론, 이미 모든 그릇은 기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죠.
“우와아...”
“진짜 하나님이 해주신 거야…”
그릇들은 출렁이는 기름을 안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감탄을 쏟아냈어요. 나도 가족들과 계속 이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어요. 아주머니와 아들들의 눈에도 아침과는 다른 기쁨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요.
솔직히 그릇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가족들을 끝까지 돌봐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한참을 기도하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아주머니는 언제 울었냐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기름 그릇들을 한데 모았어요. 기름을 팔러 나갈 준비를 하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던 그릇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어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친구들을 다 데리고 오자! 하나님은 온 동네 그릇을 다 넘치게 하실 수 있으실 만큼 엄청난 분이시니까!"
그러자 모든 그릇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어요. 그리고 이 가족은 빚을 모두 갚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열왕기하 4장 3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