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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카페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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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정 Jul 17. 2024

7.20




내 손발이 검게 변했다는 사실은 온 회사에 퍼졌다. 내 이름은 몰라도 손발이 검게 변한 직원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았다. 커피나 문서, 양치컵을 들고 다닐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손에 와 박혔다.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떠드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렸다. 그럴 때마다 시선이 꽂힌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동물원 유리창 안의 원숭이가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거겠지.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평생 이런 시선을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퇴근시간의 꽉 막힌 교통체증처럼 답답하다. 나아질 기미는 전혀 없다.


병원에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어서 오후 2시쯤 사무실을 나섰다. 다행히 과장은 자리에 없었다.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증상이라 무슨 병일지 걱정이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릴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검사결과에 대한 걱정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엘리베이터 홀에서 부장을 만나자마자 싹 사라져버렸다.


“김이지씨, 지금 어디가?”


부장의 얼굴이 불편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일회용 밴드가 붙은 손을 내밀어 보였다.


“검사결과 들으러 가야 해서요.”


팔을 걷어 팔꿈치까지 시커멓게 번져버린 검은 피부를 보여줄까 생각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랬다가 괜히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인사 조치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쯧.”


부장은 불쾌한 얼굴로 혀를 찼다. 내 귀를 의심했다. 부장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연민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경멸하는 표정을 보고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병원 갔다가 복귀해.”

“네, 부장님.”


오늘은 제멋대로 떠오르던 애교 섞인 웃음이 나오지 않아서 홀가분했다. 당당한 행동으로 부장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 유쾌했다. 병원에 가는 내내 그 생각으로 즐겁다가 병원 입구까지 와서야 내 결과가 걱정된다.


내 차례가 되고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나이든 의사가 미간을 모으고 내 검사결과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의자에 앉자 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피부 조직 검사 결과상으로는 특별한 소견이 없습니다.”

“네?”

“조직검사를 해도 피부 변색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의사는 내가 ‘특별한 소견’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되물은 줄 아는 모양이다. 같은 말을 쉬운 단어로 설명해주려는 태도가 괴상해 보였다. 내가 허탈한 채로 병원을 빠져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지하철역까지는 5분 거리였다. 그런데 햇빛은 너무 뜨겁고 몸속에서 울렁이는 불덩어리가 몇 개나 느껴져서 걷기가 힘들었다.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몇 번 몰아쉬다가 결국 옆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제일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얼굴이 뜨거웠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았지만 머리만큼이나 손도 뜨끈뜨끈 해서 별 느낌이 안 났다. 열은 아닌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알바생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크게 커피의 이름을 불렀다. 커피 이름을 듣고 일어서는 나는 언젠가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 것 같았다. 픽업대로 가 음료를 받아왔다. 빨대로 커피를 한 입 먹다 말고 입고 있던 얇은 여름용 재킷을 벗었다. 아까부터 얼굴에 열이 나는 것 같더니 실내에서도 계속 더웠다. 어깨 바로 밑에서 잘린 반팔티셔츠는 긴 재킷보다 훨씬 시원했다. 티셔츠 앞섶을 잡고 펄럭펄럭 더위를 식히며 커피를 빨아들였다. 반쯤 검게 변한 것이 신경 쓰여 무심코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팔의 검은 부분이 껑충 뛰어올랐다. 분명히 내가 보고 있었는데,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손가락 한마디만큼 더 흑갈색으로 물들었다. 소스라치는 듯 물고 있던 빨대를 뱉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혹시나 잘못 보았을까봐 커피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눈을 살짝 비볐다. 눈에 발랐던 핑크 펄 아이섀도가 시커먼 손가락에 잔뜩 묻어나왔다. 다시 팔을 보았다. 여전히 팔꿈치 위로 3센티 정도까지 검게 변해있다. 눈물이 왈칵 터졌다.


카페 구석에서 혼자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가방에 있는 티슈를 전부 쓰고도 카페에 비치된 갈색 냅킨을 한 움큼이나 썼다. 그러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직감에 소름이 끼쳤다. 겁먹은 표정으로 팔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발갛게 열 오른 얼굴에는 눈물이 뒤범벅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컵을 잡았다. 종이 컵 홀더가 살짝 젖어 눅눅했다. 빨대로 커피를 쭉 빨아들였다. 다시 팔을 보았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장이 멈출 기미 없이 쿵쾅쿵쾅 뛰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컵이 작게 흔들렸다. 커피가 다시 빨대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팔위의 경계선에 내 시선을 고정했다. 경계선이 꿈틀꿈틀 팔 위쪽으로 올라왔다.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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