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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카페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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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정 Jul 17. 2024

7.22.


커피를 끊기로 했다. 오늘부터. 어제는 마음껏 커피를 마셨다. 손을 꼽아가며 따져보니 어제 하루에만 여섯 잔을 마셨다. 그날 밤, 집에서 샤워를 하며 거울을 보았다. 팔은 어깨까지, 다리는 무릎 위 한 뼘까지 피부가 시커멓게 변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손등이 간지러웠다. 생각 없이 긁다가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시커먼 피부 위에 물집같이 생긴 것 두 개가 손등에 딱 붙어서 나 있었다. 길쭉한 원 모양이 반으로 쩍 갈라진 것 같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살짝 건드려보았지만 통증은 없었다. 꾹꾹 눌러보았더니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까 샤워할 때까지만 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눈에 보일만큼 뚜렷하게 긴 물집 두 개가 나란히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손을 씻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제 돋아난 물집 옆에 똑같이 생긴 것 두 개가 볼록 솟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할까봐 병원에 가기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장갑을 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출근할 때마다 가던 카페를 그냥 지나쳤다. 빈자리가 딱 하나 남은 쿠폰이 떠올랐다. 도장을 하나만 더 찍으면 아메리카노 보통 사이즈 하나가 공짜다. 하지만 열심히 모았던 쿠폰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커피를 마시지 않을 테니까.


커피 없이 회사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했다. 양손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라서 괜히 손을 오므렸다 폈다. 엘리베이터 홀에서 안내판의 숫자를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양손이 저릿저릿 했다. 모두가 내 손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주먹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팔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 몸으로 퍼졌다.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거래처로 보내는 메일을 쓰다가 머리가 아파서 손을 멈췄다. 얼굴을 찡그리고 자연스럽게 책상 위로 오른팔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리둥절해서 손이 향한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늘 카페 로고가 박힌 컵이 있었던 자리가 텅 비었다.


아. 끊기로 했지, 참.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지끈지끈 양쪽 관자놀이가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의자 위에 붙은 목받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얇은 눈꺼풀 사이로 느껴지는 형광등 불빛이 지나치게 환했다. 그래도 방금 전보다 한결 나았다. 머리를 기댄지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과장이 나를 불렀다.


“김이지씨. 지금 손님 오실 거거든. 밑에 가서 커피 좀 사다 주라. 네 잔만. 내 거는 아이스 라떼로 사고 나머지는 알아서.”


윤대리는 자리에서 졸고 있었고 사수와 같은 팀 경수씨는 함께 자리를 비웠다. 담배를 피우러 간 모양이다. 당장 보내야 하는 메일 때문에 약간 초조했지만 별 수 없었다. 다급히 전화한 거래처 직원보다 과장의 주문이 우선이었다.


“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며 어지러웠다. 다급히 책상을 붙잡고 커피 금단증상인가 생각했다. 눈이 멀어버린 것 아닌가 걱정하려던 찰나 다시 시력이 돌아왔다. 어지럼증은 멈췄는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천천히 걷는 것도 힘에 부쳤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이 덜덜 떨렸다.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을 샀다. 구석자리에서 몰래 과장 컵을 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살살 침을 뱉고 빨대로 휘휘 저었다. 커피 표면에 투명하게 뭉쳐있던 침이 금세 자취를 감췄다. 뚜껑을 닫고 만족스럽게 사무실로 돌아갔다. 소심한 복수는 꽤 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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