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기 수첩을 꺼내었다 격하게 기온이 뚝 떨어지자, 뒤늦게 아이 독감 접종을 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부랴부랴 아기 수첩을 들고 소아과를 찾았다.
"독감도 맞아야 하고, 일본뇌염도 접종해야 해요. 둘 다 맞죠."
간호사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오늘은 독감만 맞히기로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의 덩치는 어른만큼이나 크지만 그래도 주사약이 한 번에 두 개가 들어가면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내게는 아직 아기 같은 존재니까. 아이가 접종을 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찍어준 도장이 어느덧 빼곡해져서 이제 빈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만큼 아이도 면역력이 키워졌을 텐데. 이 어미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걱정뿐이다.
"따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겁이 많은 건 날 닮은 듯하다. 그러다가 밴드를 붙이는 의사 선생님을 보며 아이는 물었다.
"끝났어요?"
아이는 주사를 맞은 왼쪽 팔을 잡으며 다시 얼굴을 찡그린다. 주사 맞은 것도 몰랐으면서 맞았다니까 고통이 전해오나 보다. 그래도 예방접종의 고통은 짧다. 그리고 효과는 길다.
문득 인생에도 예방접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방접종이 있다면 고통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 잘 넘기고, 혹여 덜 힘들어하려나. 그러면 따끔하더라도 잠시 참고 인생 예방 주사를 맞을 텐데. 하나 인생에는 예방접종이 없다. 얼마 전 지인이 큰 아픔을 겪은 듯하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행에 힘들어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 조만간 만나서 위로를 전해야겠다.